한때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던 더불어민주당이 이 정도의 안정을 되찾은 것이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의 공로임을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더민주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그는 기대 이상의 강한 리더십과 결단력으로 이른 시일 안에 당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더민주당은 그 구원투수가 던진 공에 맞아 다시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더민주당의 비례대표 후보 선정 소용돌이를 지켜보면서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김 대표의 사태 해석이나 대응 방식이 너무 지나치다는 점이다. 정치는 사람의 마음을 사는 행위다. 특히 선거 국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김 대표는 그 대목을 놓치고 있다. 김 대표가 자신을 비례대표 앞순위에 ‘셀프 공천’ 한 것이나, 도덕성과 정체성에 흠이 있는 몇 사람을 비례대표 후보로 집어넣은 것은 의도와 관계없이 유권자들과 당원들의 마음을 잃게 하는 ‘폭투’에 해당한다. 비례대표 후보 선정 논란의 핵심은 바로 이 대목이다. 그런데 김 대표는 당원과 유권자를 설득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자기식 해석과 고집만을 앞세움으로써 사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김 대표가 자신을 더민주당에 대한 ‘자원봉사 시혜자’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특히 적절치 않다. 심지어 그는 여차하면 짐을 싸서 당을 떠나겠다는 극단적인 말도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그가 더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은 것은 개인적인 자원봉사도 아니고, 야당에 대한 시혜 행위도 아니다. 그것은 여권의 실정과 폭주로 위기에 처한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한 시대적 소명에 힘을 보태는 행위다. 그 소명을 일단 맡았다면 끝까지 완수해야 한다. 김 대표 말대로 자신을 ‘응급처치 의사’로 여긴다면 환자를 이런 상태에 두고 떠나네 마네 하는 말을 하는 것부터가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지를 잘 알 것이다.
더민주당 비대위는 21일 김 대표의 비례대표 순번을 2번에서 14번으로 조정하고 도덕성 등에 흠이 있는 일부 후보를 제외하는 등의 중재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김 대표가 이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만약 김 대표가 받아들이지 않고 버틸 경우 더민주당은 영영 헤어나오기 힘든 수렁에 빠지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더민주당은 이번 비례대표 공천 파문으로 이미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김 대표의 깊은 숙고와 현명한 처신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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