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전격 교체된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자신의 경질 배경에 청와대의 압력이 작용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관심을 보인 전시회 개최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보복 경질을 당했다는 것이다. 자질 부족이나 특별한 과오가 아니라 대통령의 심기를 받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기관의 장을 물러나게 했다면 이는 민주주의 국가, 문명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제가 된 전시회는 르네상스시대부터 현대까지 프랑스의 장식명품들을 소개하는 것인데, 카르티에, 루이뷔통, 에르메스 등 명품 업체들이 현재 판매중인 고가의 상품들이 별도로 진열된다고 한다. 김 관장은 이처럼 상업성이 강하기 때문에 국립박물관에서 열기는 부적합하다며 반대한 것이다. 전시회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에서 개최할 만한 품격을 갖췄는지는 전문가인 김 관장이 누구보다 잘 판단할 수 있다. 그렇게 문화예술적인 관점에서 내린 판단은 존중되는 게 정상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가 보고 싶다며 관심을 표명했다는 이유로 청와대가 나서 김 관장의 판단을 찍어누르고 전시회 성사를 압박한 것은 정치 논리로 문화마저 재단하는 권위주의 시대의 전형적 행태다. 그 연장선상에서 김 관장을 교체까지 했다면, 공직자가 대통령의 뜻을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어김없이 쫓겨나는 ‘심기 인사’가 문화계마저 옥죈 셈이다.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문화융성’은 문화·예술인들이 자유를 만끽하는 분위기 속에서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하지만 현 정부는 권력에 대한 충성과 획일적인 코드를 문화계에도 강요하는 퇴행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이 상영된 뒤 영화제를 통제 아래 두려는 부산시의 집요한 움직임이 대표적 사례다. 이로 인해 국제적 망신을 산 것도 모자라 청와대까지 나서서 더 큰 웃음거리를 만들고 있다. 문화가 융성하기는커녕 말라죽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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