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국회의장이 최근 새누리당 공천을 “정당민주주의 파괴”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새로운 정치결사체를 만들어볼 뜻이 있다”고 밝힌 것이 화제다. 정 의장은 ‘건강한 보수’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정치인이다. 물론 테러방지법 국회 직권상정 등 실망스러운 행보도 적지 않았으나 전체적인 기조를 보면 새누리당 안에서 보기 드문 합리적인 정치인이며, 무엇보다 삼권분립의 한 축을 담당하는 입법부의 수장이다. 현직 국회의장이 입법부 구성원들을 뽑는 총선을 앞두고 집권여당을 ‘가망 없는 정당’으로 규정한 점에서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다.
정 의장이 새누리당에 대해 이런 가혹한 평가를 내린 것은 단순히 공천 결과에 대한 실망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청와대와 친박 세력들의 끊임없는 국회의장 흔들기와 입법부 무시, 월권행위 등에 대한 반감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그리고 이번 공천을 통해 드러났듯이 새누리당 주류 세력의 의회민주주의 무시, 정당민주주의 파괴, 법치주의 훼손 행위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급기야 현직 국회의장이 “(지금의 새누리당으로는) 나라가 밝지 않다”고 경고하면서, 의장 임기가 끝나도 다시 새누리당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밝히기에 이른 것이다.
정 의장이 말한 ‘새로운 정치결사체’가 현실로 나타날지도 관심거리다. 물론 여권의 속성상 ‘새로운 보수 정당’의 출현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지금 상태는 정상적인 정당이라고 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총선을 앞두고 갈등을 ‘임시 봉합’한 것일 뿐 당내 불협화음은 이미 임계치를 벗어났다. 총선 이후 여권이 요동치면서 유승민 의원 등 새누리당에서 축출된 정치인들과 정 의장 등이 힘을 합쳐 정치세력화에 나서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 파괴력 또한 만만치 않을 수 있다. 마침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무소속으로 당선된 분들이 복당해서 새누리당에 온다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다. 어쨌든 요동치는 정국의 한복판에서 정 의장이 의미심장한 화두 하나를 날린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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