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검찰·경찰의 통신 감시 대상은 실로 광범위했다. <한겨레>가 소속 기자들과 야당 당직자, 민주노총 실무자 등의 통신자료 제공 내역을 취합한 결과를 보면 놀랍고 두렵기만 하다. 서로 통화할 일은커녕 공통점도 없어 보이는 이들이 같은 날 무더기로 통신자료를 조회당했다. ‘저인망식’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한 목적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무분별한 개인정보 수집이 수사 목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겨레> 조사 결과, 국정원은 1월7일 연이은 번호의 문서 6개로 한겨레 기자 6명, 민주노총 실무자 19명, 야당 당직자 4명, 세월호 가족 등 모두 29명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아직 통신자료 제공 내역을 받지 못한 사람도 있고 미처 확인하지 못한 문서들도 있을 것이니, 실제 제공된 통신자료는 더 많을 수 있다. 국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내사 과정에서 피내사자와 연락한 전화번호가 나와 확인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통신자료 조회를 당한 이들의 업무나 일상, 친분관계 등을 보면 특정 피내사자와 공적으로건 사적으로건 공통으로 이어지는 접점은 찾기 어렵다. 그런 이들의 개인정보가 한꺼번에 넘겨졌으니 수사 목적이라기보다 비판적 집단에 대한 전방위 사찰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만한 일은 또 있다. 취재현장에 나가지 않아 취재원과 연락할 일도 없는 <한겨레>의 편집간부와 논설위원 등에 대해 경찰과 검찰이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아는 사람 중에 수사나 내사 대상자가 없다면 사찰 목적일 수밖에 없다. 취재원이 겹치지 않는 여당 출입기자와 야당 출입기자가 같은 날, 같은 문서로 검찰의 조회 대상이 됐으니 국회 부근의 통신기지국을 통째로 들여다본 게 아니냐고 묻게 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누리과정, 노동시장 개편 문제가 논란이 될 즈음에 이들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들이 통신자료 조회 대상이 됐으니,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에 대한 감시와 사찰이 벌어진 게 아니냐는 의심은 당연하다. 야당 국회의원이나 당 실무자들에 대한 통신자료 조회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일은 당사자들이 통신자료 제공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으면 까맣게 몰랐을 것이다. 국정원과 검찰·경찰은 지금까지 영장이나 사후 통보도 없이 국민의 통신자료를 무제한으로 그러모으고, 이를 발판으로 개인의 내밀한 정보를 수집해왔다. 헌법상 영장주의 원칙과 개인의 정보인권은 내팽개쳐졌고, 수사기관 마음대로 불특정 다수를 위험인물로 간주해 감시하는 전체주의적 감시체계만 시민 위에 군림했다. 이를 ‘수사의 밀행성’ 따위 핑계로 정당화하거나 관행이라고 방치할 수는 없다. 대체 무엇 때문에 개인정보를 수집했는지, 정보를 어떻게 썼는지 따져 물어야 한다. 통신자료 수집도 엄격한 사법적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 법 개정도 시급하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