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미국계 정보기술(IT) 기업 오라클의 소프트웨어 끼워팔기와 강매 의혹에 대해 13일 무혐의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뒷말이 많다. 거대 다국적 기업의 위세와 미국의 압력에 눌려 ‘봐주기 처분’을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 사건의 지난 1년간 전개 과정을 되짚어보면 그런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애초 공정위는 오라클에 대한 제재에 상당한 자신감을 내보였다. 지난해 초 공정위에 정보통신기술(ITC) 분야를 점담하는 특별팀이 신설됐는데, 이 팀이 첫번째로 맡은 사건이 오라클의 불공정거래행위 혐의였다. 신영선 공정위 사무처장은 지난해 4월 기자간담회를 열어 “오라클이 제품 끼워팔기 등을 통해 소비자가 다른 제품을 선택할 수 없게 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시 관련 업계에선 공정위가 오라클에 수백억원대의 과징금 처분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오라클이 해외 유명 로펌들을 동원해 강력히 대응하면서 공정위의 최종 결정이 계속 늦춰졌다. 올해 1월에는 스테펀 셀리그 미국 상무부 차관이 오라클 조사와 관련해 김학현 공정위 부위원장을 비공식적으로 만났고, 지난달엔 오린 해치 미국 상원 재무위원장이 안호영 주미 한국대사에게 서한을 보내 항의했다. 공정위 안팎에서 이상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됐고, 아니나 다를까 공정위가 지난 6일 전원회의를 열어 오라클에 면죄부를 줬다.
또 언론 보도 시점을 총선 투표일인 13일로 잡은 것도 석연치 않다. 공정위는 선거와는 상관없이 일정을 정했다고 하지만, 총선 결과라는 초대형 이슈에 묻어가려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흔히 공정위를 ‘경제 검찰’로 부른다. 공정위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것은 불공정행위를 막아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고 경제력 집중을 억제해 중소기업과 소비자를 보호하라는 취지다. 그러나 오라클 사건에서 드러난 ‘무디고 무딘 칼’로는 제구실을 전혀 할 수 없다. 공정위의 각성과 분발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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