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테러방지법 강행 통과 때부터 걱정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6월부터 시행하겠다며 15일 입법예고한 테러방지법 시행령은 국정원의 전횡과 민주주의·헌법 침해의 위험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냈다. 과거 입법 과정에서 걸러졌던 내용들까지 더 극악하게 되살려냈다. 모법인 테러방지법도 잘못됐지만, 국회 입법도 아닌 정부 시행령으로 국민 기본권을 예사로 침해한 것은 더 오만방자한 월권이고 헌법 유린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군 병력의 민간 투입을 가능하게 한 조항이다. 시행령 제18조는 군 대테러특공대와 지역단위 대테러특수임무대를 중앙 및 지역 테러대책본부의 장의 요청에 따라 민간시설에 투입할 수 있게 했다. 이들 테러대책본부의 장은 국정원이 맡는다. 조항대로라면 계엄에 의하지 않고 국정원 등의 뜻만으로도 군 병력 동원이 가능해진다. 애초 이 조항은 2001년 테러방지법안에 있었지만 국가인권위원회의 반대로 빠진 것이다. 이번 시행령은 이를 되살린 것에 그치지 않고 테러대책기구의 군 투입 ‘건의권’을 ‘직접 요청권’으로 강화했다. 대신 국회 사전 통보 및 국회 요청에 따른 군 병력 철수 조항 등 견제조항은 빼버렸다.
국정원을 괴물로 만들 조항은 또 있다. 법에는 없던 ‘지역 테러대책협의회’는 국정원 지부장이 의장으로, 시·도와 중앙부처의 지역기관을 아우르게 돼 있다. 테러 예방부터 관련 업무의 심의·조정, 군 병력 투입 등 실제 행동까지 다양한 권한을 지니는 점에선 중앙의 테러대책본부와 비슷하다. 시행령대로라면 국정원은 지역에까지 이르는 국가행정체계 위에 군림하면서, 국가기능 전반에 대한 기획·지도·조정 권한을 휘두르게 된다.
그런데도 국정원 대테러센터의 구성·운영 등에 대해선 시행령에서조차 아무런 규정이 없다. 정체를 감췄으니 통제와 감시는 불가능하다. 시행령에는 국민 감시에 악용될 수 있는 개인정보 수집 권한이 규정돼 있지만, 그에 대한 통제 및 제한 규정은 전혀 없다. 유일한 견제장치라는 ‘인권보호관’의 권한도 자문과 권고 수준이다.
이런 시행령이 그냥 시행되도록 할 순 없다. 20대 국회는 테러 방지를 빙자한 국정원의 초헌법적 권한 확대를 막아야 한다. 당장 할 일은 테러방지법 폐지와 전면 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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