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들이 올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 참가 거부를 결의했다. 이대로 간다면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국제영화제는 파국적 상황에 맞닥뜨릴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병수 부산시장의 책임이 크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서 명성을 얻은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영화인들의 집단적인 노력과 헌신 덕이다. 여기에 더해 부산시민들의 아낌없는 성원이 이 영화제가 오늘의 위상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 그런 영화제를 영화인들이 거부하고 영화제가 파국의 위기에 몰리게 된 것은 부산시의 과도한 개입과 간섭에 일차적 원인이 있다.
부산영화제를 둘러싼 영화인들과 부산시의 갈등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제19회 영화제를 앞두고 서병수 시장이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의 상영을 반대한 것이 사태의 발단이었다. 서 시장이 정부의 눈치를 보며 지나친 개입을 한 것이라는 게 영화제 안팎의 중론이었다.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영화제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다이빙벨> 상영을 강행했다. 이후 부산시는 감사원 감사 결과를 빌미로 삼아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검찰에 고발하고 이 위원장의 임기가 종료된 지난 2월 임기를 연장하지 않았다. 2010년부터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집행위원장을 사실상 내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에 더해 부산시는 부산영화제 쪽이 정관 개정을 위해 자문위원 68명을 새로 임명한 데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지난 2월 서 시장은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고 자리를 민간에 넘기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영화인들이 반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문화예술은 ‘자율성과 독립성’이 생명이다. 관은 문화예술이 스스로 커나갈 수 있도록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관이 정치적 판단을 앞세워 영화제의 자율성을 훼손한 데 있다. 베를린·로테르담 등 유수의 국제영화제가 부산시의 정치적 개입을 비판한 것은 공들여 쌓은 영화제 위상이 벌써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라도 서병수 시장은 조직위원장에서 깨끗이 물러나고 영화제의 독립성을 보장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영화인들의 참여 없는 영화제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