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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학벌없는사회’ 해산이 던지는 무거운 질문

등록 2016-04-29 19:27수정 2016-04-29 21:20

18년 동안 활동해온 시민운동단체 ‘학벌없는사회’의 해산은 우리 사회에 많은 생각 거리를 던지는 사건이다. 이철호 대표가 쓴 해산 선언문은 이 단체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해산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우리는 여전히 학벌사회에 살고 있으며, 온 나라의 학생들을 학력이라는 한 가지 기준으로 줄 세우고 있다. 학벌사회를 떠받치는 대학서열체제는 깨지기는커녕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해산 선언문은 그런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자본의 권력 독점이 강화됐다는 사실에 더 주목한다. 자본의 권력은 학벌 내부에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풍속조차 소멸시키고 모든 사람을 파편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선언문의 진단대로 우리 사회는 자본 권력 우위의 계급 재생산 체제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금수저는 금수저를 낳고 흙수저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흙수저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부모의 재력과 학력이 자식 세대의 성공과 지위를 좌우한다. 계층과 신분이 그대로 대물림되는 현실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양극구조를 강화함으로써 사회통합의 토대를 허물어뜨린다. 그래서는 모든 국민이 존엄하게 사는 온전한 나라를 이룰 수 없다.

‘학벌없는사회’ 18년의 활동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이 단체가 내놓은 문제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속 시원하게 해결된 게 없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서열체제를 혁파하고 유럽의 여러 나라처럼 서열 없는 국립대학으로 재편하자는 제안은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태로는 세계 최고의 청소년 자살률로 나타나는 교육 지옥 현상을 벗어날 길이 없다.

‘학벌없는사회’ 해산 선언은 부와 권력이 대물림되는 이 완강한 사회구조를 단순한 학벌반대운동만으로는 바꿀 수 없다는 절망감의 반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학벌없는사회’는 활동을 종료했지만 이 운동의 정신까지 종료된 것은 아니다. 학벌체제를 하위 동맹으로 삼아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 권력 체제를 바꾸는 더 큰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대다수를 패배자로 만드는 완고한 불평등 구조가 바뀌어야만 이 운동이 애초 ‘학벌반대선언’에서 꿈꾸었던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열린 광장에서 만나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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