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주류인 친박들의 행태가 참으로 가관이다. 친박 핵심 인사 입에서 ‘탈박’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오는가 하면, 친박들끼리 서로 삿대질을 하는 자중지란까지 연출하고 있다. 총선 전 이들이 ‘완장’을 차고 설쳐대던 모습을 떠올려보면 쓴웃음을 금할 수 없다.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유기준 의원은 28일 친박계의 좌장 격인 최경환 의원의 원내대표 출마 자제 권유를 뿌리치고 출마를 강행했다. 원내대표 출마야 개인의 자유이니 탓할 일이 못 되지만, 그가 “친박이 패배의식에 젖어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 대목을 보면 아직도 반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친박 핵심이 아니었다고 강변하면서 “친박 후보라는 지칭은 사양하겠다”고 탈계파를 선언하고 나섰다. 세상이 바뀌니 ‘진실한 사람’이 가장 먼저 ‘배신’을 하고 나선 셈이다.
최경환 의원이 친박계의 원내대표 출마 자제를 요구하고 나선 것도 진실한 반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자신이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나가려면 원내대표는 다른 계파에 내주는 것이 유리하다는 정치적 셈법 때문이라는 게 새누리당 안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마디로 친박계는 너나 할 것 없이 총선 패배의 반성보다는 각자의 이익 추구에만 정신이 팔린 상태다.
청와대가 “원내대표 경선에 청와대를 끌어들이지 말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이야기도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애초 친박이라는 당내 계파가 만들어진 것도 박근혜 대통령 때문이고, 지난 공천이 집권여당 역사상 유례없는 ‘막장 공천’으로 흐른 것도 바로 박 대통령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진실한 사람’이니 ‘배신의 정치’니 하는 말로 공천을 좌지우지했다는 것을 까맣게 잊었는지 모르지만 국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선택적 기억상실증’이 본인의 책임 회피를 위해서는 좋을지 모르지만 국민의 눈에는 역겹기만 하다.
친박계의 자중지란을 포함해 새누리당의 총체적 위기를 수습할 책임은 누가 뭐래도 박 대통령에게 있다. 그 첫걸음은 자신이 친박 친위세력을 앞세워 새누리당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음을 시인하는 데서 시작된다. 박 대통령이 계속 자기기만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은 친박에도, 새누리당에도, 그리고 박 대통령에게도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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