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에 매기는 세금을 큰 폭으로 올려 세수만 늘렸다는 비판이 나오자 정부가 국민건강증진법을 개정해 담뱃갑에 경고그림을 넣기로 결정했다. 경고그림은 의무적으로 담뱃갑 포장지의 윗부분에 넣고, 담배를 진열할 때 이를 가리는 행위도 금지하기로 했다. 그런데 지난달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가 진열에 대한 규제 조항을 삭제하고, 경고그림의 위치를 담배업계 자율에 맡기라고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국민건강을 위한 경고그림 게재의 취지를 저버리고 담배업계의 이익만 고려한 결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게 규제개혁이라니 어이없다.
경고그림은 비흡연자의 흡연 시작을 억제하고 흡연자의 금연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효과를 내려면 담배를 사려는 사람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담배규제기본협약 가이드라인도 경고그림을 포장지 상단에 배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지 않고 경고그림의 위치를 업계 자율에 맡겨버리면 틀림없이 꼼수가 등장할 것이다. 담배를 많이 팔고 싶은 담배업계는 경고그림을 포장지 아래쪽에 넣고, 판매업자는 담배를 진열할 때 경고그림 부분을 가리려고 할 것이다. 정책의 효과가 크게 떨어질 게 뻔하다.
규개위가 담배업계 사람을 불러 의견을 들은 것도 절차상 문제가 있다. 담배규제기본협약은 담배규제 정책을 수립할 때 담배업계나 이를 대변하는 조직을 참여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협약 의장국이다. 협약이 권고하는 각종 정책을 앞장서 제도화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나라가 거꾸로 협약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으니 국제사회의 비웃음을 살 일이다.
규개위의 권고 결정에 복지부가 재심을 요청해 13일 재심이 열릴 예정이다. 국제표준에 맞게 경고그림을 넣어 입법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재심에서는 잘못된 권고를 철회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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