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7일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 원자폭탄을 사용한 유일한 나라의 대통령이 71년 만에 피폭지를 찾는 것이어서 지구촌의 눈길이 쏠린다.
미국이 밝힌 취지는 타당성이 없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핵무기 없는 세계’를 추구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해왔으며, 이번 방문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우선 아베 신조 정부로 대표되는 일본 우익세력이 이번 방문을 계기로 ‘피해자 일본’을 부각시켜 과거사에 대한 책임을 호도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이들은 이번 방문 자체를 일본 외교의 승리로 여긴다. 이번 방문이 핵무기 투하에 대한 사과 의미는 갖지 않는다는 미국 태도도 문제가 있다. 전시라고는 하지만 20만명 이상의 민간인이 한꺼번에 숨지게 한 것은 큰 잘못이다. 피해자와 가족에게 사과하는 게 옳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 일본인’과 구별되는 ‘가해자 일본’의 책임을 분명하게 묻는 일이다. 일본은 2차대전과 그 이전 식민지 지배 등을 통해 아시아 나라들에 엄청난 고통을 줬다. 이후 70년 이상 지났으나 과거사 청산 작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나아가 아베 정부는 평화헌법까지 무력화하려 한다. 이번 방문이 일본의 이런 태도를 용인하는 데 활용돼선 안 된다. 한국은 지구촌에서 2번째로 원폭 피해자가 많은 나라다. 사망자 4만명을 포함해 피해자가 7만명이나 된다. 대부분 일본에 끌려간 이들이다. 일본 정부는 자신의 피해만을 부각시킬 뿐 이들을 없는 사람처럼 여겨왔다. 미국이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묻는 데 적극 나서는 것은 역사 정의에 부합한다. 이런 노력이 히로시마 방문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
미국은 일제가 자행한 전쟁범죄와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따지지 않은 채 미-일 동맹을 아시아 전략의 한 축으로 삼은 바 있다. 미국은 이제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내세워 미-일 동맹에 더 힘을 싣는다. 일본은 미국의 움직임에 적극 호응하면서 과거사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려 한다. 아시아 나라들은 히로시마 방문이 이런 추세를 더 강화할 것으로 본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방문과 관련해 제기되는 우려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일제 피해국들이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 돼야 나름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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