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구조조정 대상인 현대그룹이 현정은 회장 일가가 보유한 회사들에 일감을 부당하게 몰아준 사실이 적발됐다. 지난해 2월 공정거래법이 개정돼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를 금지한 이후 첫 사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5일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가 현 회장의 여동생과 제부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들을 부당지원한 것으로 드러나 과징금 12억8500만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현대로지스틱스는 검찰에 고발도 됐다. 현대증권은 지점에서 쓰는 프린터·스캐너 복합기를 임대하면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에이치에스티(HST)를 중간에 끼워넣어 이른바 ‘통행세’를 안겨줬다. 이 회사는 현 회장의 여동생인 현지선씨가 지분 10%, 그의 남편인 변찬중씨가 80%를 보유하고 있다. 또 현대로지스틱스는 기존에 거래하던 중소기업과 계약기간이 남았는데도 이를 해지하고 쓰리비에 일감을 몰아줬다. 이 회사 역시 변씨와 그의 아들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부당지원행위를 밝혀놓고도 정작 현 회장에게는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았다. 현 회장이 직접 관여한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고 회사 임원이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이유에서다. 여동생과 제부가 대주주인 회사들에 일감을 몰아줬는데 현 회장이 몰랐다는 얘기다. 총수의 지시가 없는데도 임원이 처벌을 각오하고 불법을 저질렀다는 말이다. 설득력이 떨어진다. 검찰 수사에서 철저히 조사해야 할 대목이다.
일감 몰아주기는 재벌의 여러 폐해 중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현대로지스틱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중소기업의 정당한 경쟁 기회조차 빼앗아 생존을 어렵게 만든다. 기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경제 활력이 사라지게 된다. 또 해당 기업의 가치를 훼손하고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끼친다. 반면 모든 이익이 재벌 총수 일가에게 돌아간다. 이들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세금 없는 부의 이전과 경영권 대물림을 한다. 편법 상속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솜방망이 처벌’로는 일감 몰아주기를 막기 어렵다. 엄청난 이익을 챙길 수 있는데 왜 포기하겠는가. 20대 국회가 열리면 재벌들이 아예 유혹을 느끼지 못하도록 공정거래법을 다시 개정해 규제와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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