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17일 전국위원회를 열어 당을 비상대책위(비대위) 체제로 전환하고 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키려 했지만 실패했다. 의결 정족수 부족이 표면적 이유지만, 그 뒤엔 친박계의 조직적 훼방이 작용했다고 한다.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계파를 해체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분란을 일으키다니 당을 망치는 자멸 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은 한 치의 반성도 없고 집권여당은 국민 뜻을 이렇게 역행하니 정상적인 집권세력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친박계가 전국위를 무산시킨 건 비대위원 다수가 비박계로 채워지고 혁신위원장에 역시 비박계인 김용태 의원이 지명됐기 때문일 것이다. 친박계 초·재선 의원 20여명이 16일 연판장을 돌릴 때부터 조직적 방해 공작은 이미 짐작됐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전국위까지 무산시키는 ‘자폭 수준’의 행동까지 하겠느냐는 게 상식적인 관측이었다. 친박계는 이런 예측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친박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당이 깨지든 말든, 혁신이 실패하든 말든 개의치 않겠다는 저열한 속내가 명백하게 드러났다.
4·13 총선 전에 유승민 의원을 내치고 경쟁력 없는 ‘진박 후보’를 무리하게 공천했던 행태는, 총선 참패 이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대통령의 시종’으로 전락한 집권여당을 밑바닥부터 완전히 바꿔 개혁적인 보수정당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것이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과 지지자들의 준엄한 요구였다. 최소한의 양식을 가진 정치집단이라면 선거 결과를 인정하고 민심을 수용하려고 노력해야 마땅하다. 이것마저 거부하는 친박계의 행태는 생존을 위해선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는 조폭 집단과 하등 다를 게 없다. 그런 집단에 나라를 맡겼으니 경제를 비롯한 국정 운영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전국위 무산 직후 김용태 의원은 혁신위원장을 사퇴하면서 “정당민주주의가 죽었다”고 말했다. 어쩌다 새누리당이 이런 처지까지 떨어졌는지 한심하고 답답하다. 정당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국민과 당원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른 친박계는 그 책임을 엄중히 져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제가 친박을 만든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 말이 거짓임이 이번 사태로 확인됐다. 박 대통령은 전국위를 무산시킨 친박계의 책임을 준엄하게 따지라고 당에 먼저 요청해야 한다. 끝내 민심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친박계는 차라리 당을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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