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주류인 친박계가 조직적 보이콧으로 전국위원회를 무산시킨 데 이어 노골적으로 ‘친박당’ 만들기에 나섰다. 총선 패배 이후 ‘자숙 모드’는 거짓 쇼에 불과했을 뿐 다시 몰염치한 패권주의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 비박계를 향해 “나갈 테면 나가 보라”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가 하면,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정진석 원내대표에 대해서도 사퇴를 입에 올리기에 이르렀다. 비박계에서도 분당 불가피론이 확산되면서 새누리당은 완전히 공중분해될 위기에 빠졌다.
친박계의 이런 태도는 계파의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의 뜻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비박계가 당내 권력을 차지하면 청와대와 각을 세울 것이 분명하며, 그렇게 되면 대통령의 레임덕이 훨씬 앞당겨질 것을 청와대는 우려하는 듯하다. 특히 자신이 배신자로 낙인찍은 유승민 의원 등이 복당해 당의 중심 세력으로 자리잡는 것을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는 박 대통령의 오기가 전해져 온다. 그래서 차라리 당을 쪼갰으면 쪼갰지 비박계에 권력을 넘겨줄 수 없다고 나선 것이다. 여기에 검찰이 전방위적인 선거법 위반 수사를 펼치고 있어 비박계가 선뜻 당을 박차고 나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도 하고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의 내홍 사태는 그동안 국가를 이끌어온 집권세력의 추악한 민낯을 확실히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다. 당이야 어떻게 되든 자신들의 계파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집단, 상대편 계파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는 동네 뒷골목 양아치 수준의 행각도 서슴지 않는 집단이 바로 우리나라를 이끌어왔고, 앞으로도 한동안 이끌어갈 것이라는 슬픈 현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지금의 집권세력은 ‘국론통일’이니 ‘국민 역량 결집’이니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18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도 “국민이 하나가 돼 역량을 결집해 나가자”느니 “갈등과 대립이 아니라 소통과 공유, 화해와 협력을 통해 희망찬 미래를 열어 가자”는 따위의 무미건조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이 기념사는 박 대통령을 대신해서 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새누리당 모습을 보면서 그런 허망한 소리를 입 밖에 내놓는 것부터가 쓴웃음을 짓게 한다. 여당 원내대표와 청와대 정무수석이 나란히 광주행 열차를 타고서도 눈도 마주치지 않는 현실에서 화해와 협력을 말하는 것은 국민 모독이다.
새누리당은 아무리 봐도 회생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내홍을 수습할 인물도, 이견을 조정할 지도부도 없이 난파선처럼 표류만 계속할 뿐이다. 새누리당은 사실상 정신적 분당 상태이며 이제는 물리적 분당만 남았다는 진단이 정확할 수도 있다. 실제로 각종 정치권 재편의 시나리오도 난무한다. 집권여당이 계속 이럴 거면 차라리 빨리 갈라서는 것이 그나마 국가의 혼란을 줄이는 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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