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사외이사의 자격과 과잉 보수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국내 5대 재벌 상장계열사 63곳의 사외이사 225명의 공시 내용을 살펴봤더니 지난해 1인당 평균 보수가 6200만원에 이르렀다. 평균으로 연간 아홉 차례쯤 이사회 회의에 참석하고, 부의 안건에 대해서는 99.9% 찬성표를 던졌다. 대주주와 경영진을 감시·견제하는 사외이사의 의무는 소홀히 한 채 고액 보수만 꼬박꼬박 챙겼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국내 재벌 사외이사들은 경력이나 활동 내용 등에서 외국 선진기업들과 큰 차이가 있다. 미국 증시의 에스앤피(S&P)500지수에 편입된 기업들을 보면, 사외이사들의 해당 기업 근무활동은 연간 200시간을 넘는다. 또 사외이사 대부분은 전문가들이다. 반면, 국내 재벌의 사외이사들은 관료나 교수 출신 일색이다. 또 한 달에 많아야 한두 차례 열리는 회의에 참석해 회사에서 준비한 안건에 찬성표를 던지는 게 활동의 거의 전부다.
가장 큰 문제는 사외이사의 독립성이다. 사외이사 선임에 회사 대주주나 주요 경영진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사외이사들이 주주의 이익을 위한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상장회사의 사외이사 선임이 1998년부터 법적으로 의무화된 뒤 사외이사들만의 힘으로 회계부정이나 경영 부실을 막은 사례는 거의 없다. 회사의 의사결정이나 업무 집행이 부당하고 위법하다는 의심을 살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데도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회사에 불이익을 끼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사외이사 제도가 기업지배구조 원리에 맞게 운영되려면 사외이사 선임 방식부터 개선되어야 한다. 누가 보더라도 적격자이면서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사를 선임해야 한다. 선진국처럼 소액주주나 기관투자가들의 의견을 받거나 공모절차를 거쳐 추천을 받고, 사외이사로 선임된 뒤에도 구체적인 활동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사외이사 보수체계 또한 합리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연간 보수를 미리 정해 놓을 게 아니라 주주와 회사의 이익을 위한 구체적인 활동에 비례해 수당 등의 형태로 보수를 지급하는 게 바람직하다. 지금처럼 사외이사들이 납득할 만한 근거도 없이 고액 보수를 챙겨가는 것은 재벌을 비호하는 대가로 재벌한테서 공돈을 받는 몰염치한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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