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국내 유수의 공공기관 17곳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회원사로 가입해 길게는 수십년 동안 회비를 납부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아이비케이(IBK)기업은행,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은 한해 수천만원씩 지출했다.
공공기관은 정부가 투자를 하거나 예산을 지원해 설립·운영되는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등을 말한다. 정부가 기관장을 비롯한 임원의 임면권을 갖고 있으며 보수와 예산을 통제한다. 또 매년 정부로부터 경영 실적을 평가받는다. 반면 전경련은 대기업, 특히 재벌들의 이익단체다. 서로 성격이 전혀 다르다. 공익성이 핵심 가치인 공공기관이 왜 전경련에 들어갔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존립의 목적을 부정하고 정체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들 기관은 전경련 회원사들과의 네트워크 구축, 산업·경제 정보 취득,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전경련의 활동 지원 등을 가입 이유로 들고 있다.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경련 해체’를 주장하는 시민·노동단체들만이 아니라, 민간기업들 사이에서도 전경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본래의 설립 목적에서 벗어나 이념갈등을 부추기고 자꾸 정치에 개입하는 전경련의 행태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최근 전경련은 ‘어버이연합 게이트’와 관련해 큰 물의를 빚고 있다. 극우단체인 어버이연합의 ‘관제 데모’에 불법으로 수억원의 뒷돈을 댄 사실이 드러났다. 공공기관들의 회비도 유용됐을 수 있다. 그러나 전경련은 한달이 넘도록 입을 다물고 있다.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공공기관을 관리·감독하는 정부, 특히 기획재정부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기재부는 공공기관들의 전경련 가입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걸핏하면 ‘공공기관 선진화’를 내세워 잡도리를 하면서 정작 이런 부적절한 행태는 방치해온 것이다. 나랏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의 성격상 한해 수천만원은 많다면 많은 금액일 수 있다. 결코 허투루 쓸 돈이 아니다.
공공기관들은 당장 전경련에서 나와야 한다. 전경련이 탈퇴 요구를 거부한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기재부는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는지 경위를 파악하고 필요하다면 책임 소재도 가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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