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부족으로 보육대란이 다시 우려되는 가운데, 감사원이 누리과정 예산편성 의무가 시도교육청에 있다는 취지의 감사결과를 24일 내놓았다. 교육청의 재원도 대체로 부족하지 않다는 등 갈등 중인 정부와 시도교육청 사이에서 일방적으로 정부 쪽 손을 들어줬다.
감사 내용 자체가 지나치게 편향적이어서 시도교육청과 야당이 ‘청와대 코드감사’라며 반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난 13일 청와대 회동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는 야당 원내대표들의 주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셈이다. 감사원 감사가 보육대란을 푸는 데 일조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꼬이게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감사원은 서울·경기 등 9개 교육청의 경우 누리과정 예산 전액편성이 가능할 정도의 재정 여력이 있다고 밝혔다. 과다계상된 인건비·시설비 등을 조정하고 지자체의 전입금 등 추가세입을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가 추경을 고려하지 않고 있어 올해는 추가세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교실 증축은 물론 위험 및 노후시설 개선도 불가능해진다고 우려했다. 감사원이 무슨 근거로 초중등학교의 위험시설을 고치는 대신 취학 전 어린이를 지원하는 게 맞다고 섣불리 판단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교육청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의무편성하도록 한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등이 헌법이나 영유아보육법 등 상위법에 위배되는지에 대해서도 외부 7곳의 법률전문가에게 의뢰한 결과를 토대로 “위배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시행령이 모법에 어긋난다는 논란이 일자 정부가 법개정을 추진한 것은 또 뭔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누리예산 논란은 애초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0~5살 보육 및 교육 국가 완전 책임’ 공약 아래 누리과정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해놓고 그 부담을 지방정부에 떠넘긴 데서 시작됐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시중에는 후보 시절과 대통령 된 뒤의 말바꾸기를 비교하는 동영상이 떠돈 지 오래다. 감사원의 ‘코드감사’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누리과정 문제야말로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여야와 머리를 맞대고 협치에 나서야 할 사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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