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5일 제주에서 열린 관훈클럽 간담회에서 내년 대선 출마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4·13총선 이후 여권에서 ‘반기문 대망론’이 급속히 확산되는 상황에서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자신의 높은 대중적 인지도와 경쟁력 등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난다. 하지만 이런 자신감과는 별개로 반 총장이 과연 우리가 당면한 각종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인식과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는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할 것이다.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자리는 ‘개인 반기문’에 주어진 자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 ‘한국 몫’이 된 사무총장 자리에 노무현 정부가 다른 사람을 후보로 점찍었다가 그의 갑작스러운 신상변동으로 반 총장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반 총장은 ‘사무총장이 됐다’는 자체가 아니라 그 직책을 얼마나 잘 수행했는가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역대 최악의 총장 중 한 명”이라는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혹평을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국제사회의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다. 유엔 사무총장을 대선 후보의 최대 자격으로 내세우는 것이 ‘과대포장’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이유다.
반 총장은 관훈클럽 간담회에서 “국민통합”을 유달리 강조해 통합을 대선 도전의 키워드로 삼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런데 그가 평생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국민통합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는 심지어 자신을 유엔 사무총장으로 추천한 고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조문을 하지 않았고, 두어 달 뒤인 2009년 8월 제주평화포럼 강연자로 참석하면서도 묘소를 찾지 않았다. 여권 대선 후보를 염두에 둔 꾀 바른 정치 행보는 될지언정 국민통합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는 1980년대 하버드대 연수생 시절 미국에 망명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향을 보고한 것에 대해서도 “정부와 국가를 위해 있는 것을 관찰·보고한 것일 뿐”이라고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이런 해명은 ‘영혼 없는 외교공무원’으로서는 훌륭한 변명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당시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 등을 돌아볼 때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치고는 너무나 심각한 시대의식 부재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반 총장이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길이 참으로 험난하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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