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가 30일 개원했다. 여야 정당들은 일제히 첫 의원총회를 열고, 4·13 총선에서 표출된 민의를 수렴해 민생 우선의 협치를 펼쳐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새 국회가 문을 여는 날, 저 멀리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보낸 메시지를 보면 과연 총선 민의에 부합하는 협력과 협치의 정치가 자리잡을 수 있을지 걱정이 든다.
당위론적인 기대와는 별개로, 대통령과 국회가 대등한 관계에서 때론 견제하고 때론 협력하며 국민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협치’를 해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20대 국회의 문이 열리면서부터 이미 심각하게 어긋나고 있다. 그 책임은, 삼권분립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 없이 국회를 여전히 행정부의 일개 부처 다루듯이 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시대착오적 인식과 태도에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국회 개원 메시지’에서 “경제위기와 안보불안 등 어려움이 많은 시기인 만큼 국회가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헌신해 주길 바란다. … 20대 국회가 ‘국민을 섬기고 나라를 위해 일한 국회’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마치 경찰청을 방문한 대통령이 ‘국민이 불안하지 않도록 치안에 만전을 기해 주길 바란다’고 경찰 간부들을 격려하고 당부하는 어투와 다를 게 없다. 행정부 수반으로서 입법부인 국회를 어떻게 설득하고 협력해 나갈지에 대한 의지 표명은 전혀 읽을 수가 없다. 국민이 지난 총선에서 왜 16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었는지, 그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찾으려야 찾아보기 어렵다. 국회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집권여당의 총선 참패에도 하나도 바뀐 게 없다.
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임에도 무리하게 국회법 개정안(일명 ‘상시 청문회법’)의 재의 요구를 한 것도 이런 인식의 발로일 것이다. 박 대통령은 19대 국회 임기 종료를 불과 이틀 앞두고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재의 요구)을 행사했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이를 두고 “국회법상 임시회를 소집하려면 3일 전에 공고를 해야 한다. 국회 종료 이틀 전에 대통령이 재의 요구를 한 건 헌법이 정한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국회를 열 수 없는 상황임을 뻔히 알면서도 황급히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재의 요구를 결정한 건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해도 너무 무시하는 처사란 뜻이다. 이런 대통령을 두고 ‘협치’를 말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여야는 이제 국회 원 구성 협상에 들어간다. 국회법에 따르면 내주엔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들을 새로 뽑고 본회의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국회의 협상을 정치권의 협잡쯤으로 생각하는 대통령 아래서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선거를 통해 새로운 국회가 문을 열었지만 ‘국민이 바라는 정치’는 요원한 듯싶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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