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과의 합병에 반대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 삼성물산 주주의 주식을 회사 쪽이 제시한 가격보다 높게 쳐주라는 고등법원 판결이 나왔다. 두 회사의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지난해 5월 이사회 결의를 거친 두 회사의 합병은 제일모직 지분을 많이 가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가 3세들에게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합병비율이 정해졌고, 삼성물산 주주들에는 큰 손해라는 비판이 많았다. 상고할 수도 있어 아직 확정판결은 아니다. 하지만 사법부가 합병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삼성 최대주주 일가는 이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법원은 삼성물산 주주이던 일성신약이 제기한 주식매수청구권 조정 소송에서, 회사 쪽이 자본시장법 시행령 규정에 따라 산정한 주당 5만7234원의 매수청구권 행사 가격보다 16.4% 비싼 6만6602원에 주식을 사주라고 판결했다. 삼성물산 주가가 합병 이사회 결의 훨씬 이전부터 ‘비정상적’으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삼성물산 실적 부진이 “최대주주 일가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에 의해 의도됐을 수 있다는 의심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상반기 대형 수주가 한 건도 없었다. 5월에는 카타르 복합화력발전소 공사를 수주했지만, 낙찰통지서를 받은 7월말까지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삼성물산 주가가 떨어져 합병비율 산정에 불리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가를 조작했다고 한 건 아니나 대주주 일가를 위해 다른 주주들의 이익을 희생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합병의 합법 여부와 별개로, 이재용 부회장 등은 3세 승계 과정의 도덕성에 상당한 흠집이 생겼다.
법원은 국민연금공단의 삼성물산 주식 매매 내역도 수상하다고 짚었다. 합병 이사회 결의 전에는 대규모로 주식을 매도하다가, 이사회 결의 뒤에는 파는 게 유리한 국면에서도 오히려 매수했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의결권 자문업체의 합병 반대 권고를 물리치고, 기금운용본부의 전문위원회 결정도 거치지 않고 합병에 찬성 표결했다. 법원은 “정당한 투자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통해 진상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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