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고용노동부가 8일 조선업 고용지원대책을 내놓았다. 이달 안에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 업종으로 지정하는 등 기존에 거론돼온 여러 지원책을 두루 언급하긴 했으나 ‘암 환자한테 감기약 먹이는 꼴’이란 반응이 나올 정도로 현장 반응은 냉랭하다. 내년 말까지 6만명이나 되는 실직자가 예상되는 상황의 절박성에 비해선 턱없이 미흡한 처방인데다 대책 마련 과정과 절차마저 정당성을 잃고 있는 탓이 크다.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정부 당국이 이제라도 숙고해야 할 대목이다.
정부 대책은 우선 순서부터 잘못됐다. 수년 전부터 조선·해운업 부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랐음에도 정부와 경영진이 대책 마련에 실패한 원인을 따지고 책임 소재를 가리지 않은 채 노동자와 국민에게만 그 책임과 부담을 전가하는 것은 본말이 뒤집힌 것이다. 검찰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수사에 나섰으나 비리를 넘어 무능경영과 정책실패까지 수사로 단죄하기는 어렵다.
정부와 채권단 주도로 ‘구조조정’ 중심의 대책을 추진하면서 정작 피해당사자인 노동조합 등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배제하는 것은 정부 대책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앞으로 갈등을 불러올 가능성도 크다.
내용 면에서도 고용유지지원금 인상이나 직업훈련 강화 등의 방안만으론 벼랑에 선 노동자들을 구제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은 노동시장의 가장 약한 고리, 즉 물량팀으로 불리는 재하청 계약직들이 대거 실직할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한다. 이미 2만명 정도가 일터를 잃었고 앞으로도 3만~4만명이 더 해고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가 발표한 조처들만으로는 이들이 ‘안전그물도 없이 절벽 밧줄 위에 선 처지’가 되고 말 것이라고 노동계는 우려한다.
구조조정 이전에 노동시간 단축 등의 대안, 물량팀 등 하청·재하청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 세계 조선산업 전망 속에서의 중장기 산업·고용정책 등 숱한 논의 과제는 정부의 일방통행 속에 묻혀버렸다.
9일 양대 노총과 세 야당 주최로 열린 대토론회에서 신원철 부산대 교수(사회학)를 비롯해 양대 노총과 야당 참가자들도 이구동성으로 노사정이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기구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의미가 크다. 정부는 이제라도 진지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노사정 대화의 자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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