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10일 국회의원 연찬회를 열었지만, 현안인 계파 문제와 혁신 방향에 관한 토론은 없었다고 한다. 그 대신에 새누리당 몫의 국회 상임위원장을 누가 맡을지를 놓고 물밑 논의가 뜨거웠다고 한다. 반성과 혁신은 뒤로하고 새로 개원한 국회의 떡고물에만 정신이 쏠린 것이다. 이게 두 달 전 최악의 총선 참패를 당한 정당이 맞나 싶다. 이런 집권여당에 당원과 지지자들이 어떤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당 지도부는 연찬회의 가장 큰 성과로 ‘계파 청산’ 합의를 꼽았다. 연찬회 말미에 “지금 이 순간부터 새누리당에서 ‘계파’라는 단어를 쓰지 않겠다”는 ‘계파 청산 선언문’을 발표한 걸 두고 하는 얘기다. 또 친박과 비박의 핵심 인사들은 연찬회가 끝난 뒤 인근 음식점에서 폭탄주를 돌리며 ‘화합’을 다짐했다고 한다. 미사여구의 선언문으로 계파를 없애고 폭탄주 건배로 화합을 이룰 수 있다면, 새누리당이 지금까지 그 난리를 치면서 사생결단의 이전투구를 벌인 이유는 뭔지 아리송하다.
4·13 총선 참패의 원인이 여럿 있겠으나 그중 핵심은 ‘박근혜 대통령을 뒷배로 삼은 친박 세력의 공천 전횡’이라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새누리당의 계파 문제란 곧 ‘친박’ 문제다. 그러니 친박 핵심 인사들이 2선으로 후퇴하고 박 대통령의 당내 영향력을 차단하는 실질 조처를 해야만 비로소 계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선언문 한장이나 폭탄주 한잔으로 계파가 사라질 리 없다는 건 누구보다 새누리당 의원들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보인 새누리당 행태는 계파 청산이 아니라 사실상 친박 계파에 면죄부를 주려는 걸로 국민의 눈엔 비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들이 ‘계파 청산 선언’을 했으니 이제 ‘혁신비상대책위’(위원장 김희옥)에선 그 문제를 우회해서 7월 말~8월 초로 예정된 전당대회 준비에만 온 힘을 쏟을 게 분명하다. 새로 들어서는 지도부는 ‘친박’이 장악할 거라는 예측이 당 안팎엔 파다하다. 새누리당은 하다못해 화장이라도 고치려는 노력 없이 알량한 눈속임만으로 지금의 위기를 어물쩍 넘어가려 하는 것이다. 참으로 뻔뻔하고 한심하기가 이를 데 없다. 새누리당의 무신경과 강심장이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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