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남학생들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같은 학교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삼아 언어 성폭력을 저질러온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성의 공간이어야 할 대학 내부의 의식과 문화가 이토록 저급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가해 학생 8명은 1년 동안이나 대화방에서 온갖 성폭력 수준의 대화를 했다고 한다. 그 분량도 A4 용지 700장 분량에 이른다. 이런 사실은 학생들의 대화 내용을 보다 못한 한 학생이 내부 고발을 함으로써 알려졌다. 이 사건 대책위원회가 밝힌 대화 내용을 보면,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여성 모욕적 언사와 성폭력적 발언으로 가득하다. 심지어는 지하철에서 여성 몸을 몰래 찍는 데 성공했음을 자랑하는 글까지 있다. 일부 대화에서 가해 학생들은 여학생들의 이름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성폭력적 언동을 남발하기도 했다. 남성들의 왜곡된 성의식과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의 전시장을 보여주는 듯하다.
더 참담한 것은 가해 학생 중에 양성평등센터 서포터스, 새내기 새로배움터 성평등지킴이, 페미니즘 소모임 회원, 과거 총학생회 집행부원도 있다는 사실이다. 학교 안에서 자치활동을 하는 학생들, 더구나 성평등을 위해 활동한다는 학생들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뿐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 학생들의 의식에 스며든 극우적 여성혐오 문화다. 가해 학생들이 사용한 말을 보면 인터넷 사이트 ‘일베’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표현하는 용어들이 들어 있다. 우리 사회 일부의 극단적인 여성혐오 문화가 대학 내부에까지 유포됐음을 보여준다. 유사한 사건이 국민대에서도 일어난 적이 있음을 보면 이런 일이 고려대만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대학생이면 자신의 말과 행동을 충분히 성찰하고 책임질 나이다. 고려대는 가해 학생들의 성폭력 언동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잘못에 합당한 조처를 해야 한다. 얼마 전 강남역 살인사건에서도 드러났지만 이번 고려대 사건은 우리 사회가 여성혐오와 반여성주의의 늪에 빠져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잘못된 성의식 표출과 여성의 성적 대상화가 얼마나 반인간적이고 반인권적인지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지 않으면 이런 일이 또다시 벌어질 것이다. 우리 사회가 모두 나서서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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