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이슬람국가(ISIL)의 테러 대상에 한국인이 포함됐다며 한때 당사자의 구체적인 신원까지 공개하는 일이 벌어졌다. 테러방지법 강행 통과 때부터 우려하던 ‘괴물 국정원’ 탄생의 예고편을 보는 듯하다.
국정원은 이슬람국가가 세계의 테러 대상을 지목하면서 국내 미 공군 시설 2곳과 복지단체 직원 ㄱ씨의 신상정보를 공개하자, 지난 19일 이를 받아 ㄱ씨의 이름과 전자우편 주소, 집 주소까지 그대로 보도자료와 함께 공개했다.
우선 지난 8일 처음 정보를 입수해놓고 10여일이나 지난 뒤에야 조처에 나선 사실부터 이해하기 어렵다. “정보 분석에 시간이 걸렸다”는 해명이 변명처럼 들린다. 더구나 내부적으로 “테러 가능성이 없다고 봤다”며 굳이 보도자료까지 만들어 공개한 것은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국정원은 “미국 올랜도 테러 사건 이후 국민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 해명이 사실이라 해도 본말이 바뀐 것이다. 테러방지기관은 국민을 보호하는 게 우선적인 임무다. 경각심을 갖느냐 마느냐는 국민이 그 정보를 보고 판단할 일이지 주제넘게 정보기관이 나서서 계도할 일이 아니다. 더구나 개인 신상정보까지 그대로 공개했다가 삭제한 대목에 이르면 과연 기본적인 인권의식을 갖춘 기관인지 의심스럽다.
국정원은 대선 댓글 공작을 저질러놓고도 반성은커녕 오히려 가담자들을 적극적으로 감싸고 있는 조직이다. 그 파란을 겪고서도 다시 북한 식당 종업원 탈북사건을 총선용으로 기획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그러니 국내담당 차장에 청와대 민정수석의 절친을 앉혀놓고 대선을 앞두고 또 무슨 꿍꿍이를 꾸밀지 알 수 없다.
국회입법조사처와 국가인권위원회는 테러방지법 시행령의 위헌성을 지적하고 있다. 필리버스터까지 하면서 입법 저지에 나섰던 야당들은 총선 전 약속한 대로 법 개정에 즉각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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