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의 기업 부실채권 비율이 5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또 은행들이 부실이 우려되는 기업 대출을 ‘정상’으로 분류하는 등 여신 관리에서도 허점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우조선해양의 사례에서 확인됐듯이 잘못된 여신 관리는 부실기업을 정상기업으로 둔갑시켜 결국 국민경제에 큰 손실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은행이 30일 국회에 제출한 ‘금융 안정 보고서’를 보면, 지난 3월말 기준 국내 은행의 기업 부실채권 비율이 2.6%로, 2011년 3월말의 2.8% 이후 가장 높았다. 부실채권은 이자가 석달 이상 연체된 대출이다. 경기침체가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기업 구조조정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과 철강 등 취약업종에 대한 대출이 많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특수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은 3.5%까지 올라갔다.
또 한은은 은행들의 여신 관리에 구멍이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를 보면, 은행에 따라 부실이 우려되는 기업 대출의 57~88%가 정상 대출로 분류됐다. 특히 회계감사에서 ‘부적정’으로 평가돼 존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 기업의 여신도 70% 이상이 정상인 것으로 분류됐다. 은행들은 부실 가능성 유무와 관계없이 이자만 제때 내면 정상으로 분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자를 연체한 기업 대부분이 연체 이전부터 재무 건전성이 악화했고, 연체가 시작되는 시점에서는 이미 67%가 자본잠식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다.
은행들이 이처럼 여신 관리에 소극적인 것은 가능한 한 충당금 적립을 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은행은 부실채권이 많아지면 그만큼 충당금을 많이 쌓아야 한다. 충당금은 회계상 손실로 처리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익이 줄어들게 된다. 은행 최고경영자들이 임기 동안 최대한 실적을 내겠다는 욕심에 부실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채권을 정상인 것처럼 포장해 손실을 키운 사실이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난 바 있다.
한은은 국내 은행의 여신 관리 행태가 사후적 경향이 강한 탓에 사전적 위험 차단 기능이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이자 연체 여부에만 국한하지 말고 부실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여신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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