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정부가 지난해 10월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대우조선의 대규모 분식회계 의혹을 보고받고도 이를 덮고 자금 지원을 밀어붙인 것으로 드러났다. 중대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으며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할 일이다.
<한겨레>는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10월22일 청와대 서별관회의에 제출한 ‘대우조선 관련 문건’을 입수했다. 문건을 보면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최경환 경제부총리,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문건에는 “대우조선에 5조원 이상의 부실이 현재화돼 감리가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있다” “금융감독원이 자발적 소명 기회를 부여했으나 대우조선은 소명 자료 제출에 소극적이다” 등의 내용이 나와 있다.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는 대우조선이 금융감독당국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서별관회의에선 대우조선에 대한 금감원의 특별감리 착수 같은 필요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주일 뒤인 10월29일 산업은행은 4조2000억원의 자금 지원을 담은 ‘대우조선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다. 또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의 최근 폭로와 일맥상통한다. 그는 4조2000억원 지원과 관련해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정부의 결정 내용을 전달받았다.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주장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부실을 낱낱이 드러낸 뒤 그에 맞춰 지원 여부부터 정하는 게 순서다. 그런데도 서별관회의에선 진상 규명은 뒤로 미룬 채 엉터리 장부를 근거로 지원 방안을 내놨다.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진 것이다.
야 3당은 지난 1일 ‘조선·해운사업 부실화 원인과 책임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발의했다. 새누리당의 비협조로 상임위원회별 청문회 개최가 진전이 없자 국정조사 추진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상임위별 청문회는 위원장의 동의나 교섭단체 간사들의 합의가 없으면 안건 상정이 사실상 어렵지만, 국정조사는 재적 의원 4분의 1 이상이 찬성하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서별관회의의 문제점이 명확히 제기되지 못한 상황에서 청문회 개최 요구는 정치 공세”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번 문건 공개로 이런 주장은 이제 설득력을 잃게 됐다. 새누리당도 정략적 태도에서 벗어나 진상 규명 작업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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