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의 통화 내용과 재직 시절 보도 통제 내용을 적은 비망록을 공개했던 김시곤 전 <한국방송> 보도국장이 6일엔 “길환영 당시 사장이 ‘대통령의 뜻’이라며 사표를 내라고 했다”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라면 결국 세월호 참사 등에서 정부 비판 보도를 통제하고 마지막엔 말을 듣지 않으니 사표를 받은 사람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란 얘기다. 김 전 국장 말의 진위는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하필 오늘 (대통령이) 케이비에스를 봤네”라는 이 전 수석의 발언과 박 대통령의 과거 행적 등에 비춰보면 사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청와대의 ‘사과’ 운운했으나, 말 몇 마디로 넘길 사안이 아니다. 방송법 위반은 물론 정치적으론 탄핵감이다.
청와대가 “통상적 업무”라더니 7일엔 여당 의원들이 언론에 대한 ‘협조’ 요청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녹취록과 비망록을 보면 ‘통상적 업무’로 언론에 ‘협조’를 구하는 내용이 아님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사장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청와대 홍보수석이 정부 비판 보도를 빼달라는 건 단순히 해명이나 협조 수준을 넘는 압력 내지 통제임은 물론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 특종 기사를 내보냈는데 사장이 칭찬은커녕 보도본부장, 보도국장에다 정치부장, 법조팀장까지 불러올려 “어떻게 이런 게 나갈 수 있어?”라고 다그쳤다니 ‘외압’의 수준을 짐작할 만하다.
사건 초기 ‘죄송’하다던 이 전 수석이 청와대의 ‘통상적 업무’ 주장 뒤 ‘물의’라고 한발 빼더니 급기야 새누리당 대표 출마까지 강행한 걸 보면 이 사건에 대한 박 대통령의 뜻이 어디 있는지 알 만하다.
박 대통령은 문화방송 파업 때도 이상돈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통해 노조에 파업을 풀면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뜻을 전달해놓고도 집권 뒤 태도를 바꿔 노조탄압을 방조해왔다.
친정부 보수언론들의 엄호 속에 박 정권의 방송장악과 권언유착이 계속되는 동안 우리나라 언론자유지수는 세계 70위의 사상 최악으로 추락했다. 언론자유는 모든 자유를 자유롭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유다. 총선에서 방송 정상화를 공약한 야당들의 책임은 그만큼 막중하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이 섣불리 이 사안을 협상용으로 다루려 하다가는 자칫 진상 은폐의 공범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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