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행정부가 6일 인권침해 혐의를 걸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미국 입국 금지, 미국 내 자금 동결 및 거래 중단’ 대상으로 지정했다. 미국의 이번 조처는 다른 나라 최고지도자를 직접 제재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전례가 드문 일이다. 북-미 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이번 제재에 앞서 지난 3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북한의 5개 기관과 개인 11명을 특별 제재 대상에 올렸다. 이어 지난달 1일에는 미국 의회가 만든 대북 제재법에 따라 북한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번 제재는 북한이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는 ‘최고 존엄’을 직접 지목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조처와는 상징성의 크기가 다르다.
파장이 큰 사안인 만큼 ‘김정은 제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직접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지난달 무수단 미사일 발사에 성공한 것이 오바마 대통령이 이런 결정을 내리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계속 도발하는 북한을 압박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음 직하다. 하지만 이런 강경 조처는 미국과 북한의 관계를 대화로 풀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 것이어서 향후 북-미 관계에 난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사드의 한국 배치를 밀어붙이고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를 강화하기 위해 북한 카드를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이번 제재는 누구에게도 득이 되기 어렵다. 북한으로서는 최고지도자의 명예가 훼손된 이상 강력하게 반발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최악의 경우에는 제5차 핵실험을 강행할 수도 있다. 핵실험이 아니더라도 한반도와 동북아 긴장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 정부가 미국의 제재에 즉각 환영 논평을 낸 것은 가벼워 보인다. 무엇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될지 따져보고 신중하게 대응해야 할 마당에 손뼉부터 치고 나온 것은 압박 이외의 대안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미국은 북한 핵 문제의 실질적인 해결을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북한과 대화를 모색해야 한다. 중국이 동조하지 않는 상태에서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할 수 없으며, 강한 압박은 강한 반발을 불러오게 되어 있다. 다른 현실성 있는 방안을 찾지 않고 제재에만 몰두해서는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가고 북한 핵 문제 해결의 길은 더욱 멀어지게 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