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17일 20대 총선 참패의 원인을 분석한 ‘국민백서’를 공개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런 정도의 백서를 내려고 총선 이후 석달간 고민했나 싶을 정도로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원내 과반 의석을 잃고 제2당으로 추락하는 유례없는 참패를 당했는데, 도대체 왜 그렇게 민심의 혹독한 외면을 받은 건지에 관한 책임 규명과 진솔한 반성을 찾기 어렵다.
새누리당 비대위는 300쪽 가까운 분량의 백서에 유권자와 당원, 전문가, 출입기자 등 다양한 목소리를 가감 없이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양한 의견’을 그냥 나열하는 것만으론 총선 패배의 진짜 이유를 제대로 짚어낼 수 없다. 백서는 ‘진박 마케팅’으로 여론을 악화시킨 최경환 의원 등 친박 핵심세력의 책임이나 당 대표로서 공천의 독립성을 지키지 못한 김무성 전 대표의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또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독단을 지적하면서도 이 위원장을 뒤에서 움직인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책임은 분명하게 적시하지 않았다. 비겁하고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나마 백서에서 눈길을 끄는 건 유권자 심층면접조사 내용이다. 대선 때 박 대통령에게 투표했으나 총선에선 지지를 철회한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심층면접조사에서, 유권자들은 한목소리로 대통령의 무능과 독선, 불통, 수직적 당-청 관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바로 이것이 총선 실패의 핵심 원인이며 새누리당이 새롭게 태어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백서를 보면 이 문제를 여러 항목 중 하나로만 두루뭉술하게 다루고 있다.
김희옥 비대위원장은 백서를 내면서 “과거보다 미래가 중요하다. 당이 어려워진 건 모두의 책임이다”라고 말했다. ‘모두의 책임’이란 건 결국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말과 같다. 그런 생각을 갖고 백서를 만들었으니 백서가 과거 잘못을 처절하게 반성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가 없다. 당장 김 위원장은 ‘계파갈등 해소’를 외치지만 친박과 비박의 갈등이 훨씬 심해지는 현실이 그걸 말해준다. 선거 패배를 냉정하게 반성하지 못하는 정당에 유권자는 다시 표를 주지 않으리란 사실을 새누리당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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