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을 위한 ‘화해·치유재단'이 28일 피해자 할머니들과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비롯한 지원·시민 단체의 반발 속에서 공식 출범했다. 정부로서야 일본 정부와의 합의를 이행하는 차원에서 재단을 출범시키는 것이겠지만, 피해자와 단체들 처지에서는 여러모로 또다시 상처의 씨앗을 뿌리는 행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재단 출범이 화해와 치유의 출발점이 되기는커녕 갈등과 반발을 촉발하는 ‘개문 발차'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부와 피해자 및 시민단체 사이에 엇박자가 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 초부터 줄곧 위안부 해결의 원칙으로 내세운 ‘국민의 눈높이와 피해자의 납득'이라는 기준과 동떨어진 내용으로 12·28 합의를 서둘러 매듭지은 데 있다. 위안부 문제는 원폭 피해, 사할린 동포 문제와 함께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는 것이 정부의 원칙인데도, 12·28 합의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모든 과거사 사안이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일본의 논리를 수용하는 식으로 정리되었다. 그 결과 한·일 갈등이자 국제사회와 일본 사이의 갈등 사안이 우리나라 내부의 찬반 갈등으로 전화되는 우스운 꼴이 되었다.
이런 근본적인 한계는 차치하더라도 재단을 출범시키는 과정에서 보인 정부의 자세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도 국가적인 차원의 갈등 사안이라면 대통령이나 외교부 장관이 직접 피해자를 만나 설득해도 모자랄 판인데 전혀 그런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아베 신조의 일본 정부가 일본 납치자 문제를 대하는 자세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합의의 가장 논쟁적인 사안인 소녀상 철거 문제도 잠복해 있는 폭탄이다. 일본 정부의 태도로 보아 일단 소녀상 철거를 전제조건 삼지 않고 재단에 10억엔을 출연하겠지만, 돈을 낸 뒤부터는 본격적으로 소녀상 철거 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출연금의 사용처를 놓고도 우리 쪽에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일일이 간섭할 가능성이 크다.
이 모든 것이 원칙 없는 정부, 줏대 없는 정책이 자초한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잘못을 수정하고 보완할 시민의 책임이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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