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4일 새누리당 대구·경북(TK) 국회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지역을 성산 포대가 아닌 성주 내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있다는 뜻을 밝혔다. 성산 포대를 ‘사드 배치의 최적지’라고 강조했던 국방부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다른 지역도 검토해보겠다”고 꼬리를 내렸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태도다. 국가의 중대한 정책 결정이 얼마나 허술하고 졸속으로 이뤄졌는지 자인하는 동시에, 사드가 군사적으로 꼭 필요한 것인지조차 근본적인 의문이 들게 한다.
박 대통령은 의원들 면담에서 “성주군민의 우려를 고려해 군에서 추천하는 지역이 있다면 성주군 내 새로운 지역을 면밀하고 정밀하게 검토 조사하도록 해보겠다”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여권 관계자는 “성주군 내에서 배치 지역을 옮길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지, 사드 자체를 재검토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말이 되지 않는 변명이다. 성주군 내에서 옮기든 아니면 군 밖으로 옮기든, 어쨌든 기존의 사드 배치 지역 결정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온 나라를 들끓게 하고 동아시아 긴장을 높인 중대한 국가안보 결정이 어찌 이리도 졸속으로 이뤄지고 또 쉽사리 번복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 태도로 보면 지금이라도 사드 배치를 철회하지 못할 이유 또한 없을 것이다.
국방부의 변화무쌍한 태도 변화는 지역주민과 국민이 보기엔 더욱 가증스럽다. 국방부는 이제까지 “군사적 효용성과 작전 가용성, 비용, 공사 기간 등을 기준으로 볼 때 성산 포대가 최적의 적합지”라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사람이 살지 않는 성주군 염속산이나 까치산으로 옮기라는 일부 주민 요구에 대해서도 “이미 검토했으나 최적지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대통령 말 한마디에 배치 지역을 재검토하겠다니, 성산 포대 배치라는 애초 결정이 옳았는지부터 의심이 든다. 또한 국방부가 사드 배치의 군사적 효용성을 제대로 검토는 한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이유로 밀어붙이고 있는 건 아닌지도 당연히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지역주민이 아닌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을 만나 ‘배치 지역 재검토’를 약속한다고 여론이 수그러들 것이라 예상한다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정부 불신과 배신감만 커질 뿐이다. 결정 과정이 투명하지 못하고 졸속인 사드 배치를 계속 밀어붙이는 게 옳은지 박 대통령과 국방부는 대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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