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몰아주기’는 재벌이 우리 경제에 끼치는 가장 큰 해악 중 하나다. 재벌 총수 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그룹 계열사 일감을 몰아주다보니 같은 업종의 중소기업들은 처음부터 경쟁 기회를 박탈당한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돼 경제의 혁신이 아예 싹트기 힘들어진다. ‘경제 생태계’가 망가지는 것이다. 비합리적인 이유로 일감을 몰아준 계열사는 기업 가치가 훼손되고 주주들은 손실을 입게 된다. 또 일감 몰아주기는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만 제대로 막아도 재벌의 폐해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여야는 2013년 경제민주화 차원에서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도입했고2015년부터 시행했다. 그러나 적용 대상을 지나치게 축소한 반면 예외는 과도하게 인정해 실효성이 의심됐다. 아니나 다를까, 53개 대기업집단의 내부거래 금액이 지난해 162조원에 이르는데도 그동안 일감 몰아주기로 제재를 받은 곳은 현대그룹 한 곳뿐이다. 재벌들이 엉성한 법을 요리조리 피해 갔기 때문이다. 현대글로비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현행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총수 일가가 보유한 지분이 30% 이상(비상장회사는 20%)인 경우에 한해 적용된다. 정몽구 회장과 아들 정의선 부회장은 법 시행 일주일을 앞두고 현대글로비스 지분율을 30%에서 9주 부족한 29.9%로 낮췄다. 물류회사인 현대글로비스는 지난해 국내 매출액 5조원 중 절반이 넘는 2조6천억원을 현대차와 기아차 등 계열사들과의 거래에서 올렸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되레 일감 몰아주기를 합법화해준 꼴이 됐다.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이 8일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지분율 기준을 상장·비상장 구분 없이 모두 20%로 강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앞서 같은 당 김동철 의원은 지난 6월 지분율 기준을 10%로 강화하는 개정안을 내놨다. 이들 개정안은 예외 사유도 대폭 줄였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도 4·13 총선 때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를 공약으로 내놨다. 국회가 이번에는 일감 몰아주기를 제대로 막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법을 만들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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