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지도부가 11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오찬 회동을 했다. 대통령과 여당 새 지도부의 첫 만남이다. 이정현 대표가 박 대통령 비서 출신이기에 이번 만남은 향후 당-청 관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자리로 특히 주목을 끌었다.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대통령에게 할 말을 하는’ 모습을 이 대표가 보여주지 못해 실망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취임 직후 ‘대통령과 맞서면 여당 의원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등의 발언을 해서 당 안팎의 의구심과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이 대표 역시 이런 분위기를 의식했는지 청와대 오찬에선 개각 문제를 비롯해 현안 일부를 언급하긴 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대통령에게 솔직하게 민심을 전달하기보다는 구색을 맞추는 데 그쳤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대표는 개각을 건의하면서 “대통령이 판단하실 문제지만, 탕평인사·균형인사·능력인사, 또 소수자 배려 인사 이런 부분이 좀 반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으로 추상적이고 모호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개각이란 곧 인사 문제다. 그렇다면 지금 인사 문제에서 가장 핵심인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는 왜 언급하지 않은 건지 궁금하다. 대통령이 우 수석을 여전히 신임하고 있기에 ‘개각’이란 표현으로 인사 문제를 언급하고 넘어간 게 아닌가 싶다.
더구나 개각을 말하면서 현 내각의 어떤 점이 문제인지, 외교안보 또는 경제부처 장관을 바꿔야 하는지 등에 대해선 아무런 구체적인 설명을 하질 않았다. 이 대표가 건의한 ‘탕평인사·능력인사’라는 건 기실 “좋은 사람 쓰시라”는 식의 하나 마나 한 얘기일 뿐이다. 정치란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정치 현안에 관해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이런 식의 일반적인 얘기만 나눈다면 국민들은 그걸 보며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물론 오찬 뒤 박 대통령과 이 대표가 따로 만났다니 그 자리에선 좀더 구체적인 대화를 나눴을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 위신을 고려해 ‘민감한 현안’을 비공개로 얘기하는 건 여당 대표가 취할 행동이 아니다. 이정현 대표는 이제 대통령 비서가 아니다. 대통령 면전에서 민심과 당의 의견을 가감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처럼 지극히 당연하고 두루뭉술한 얘기만 대통령에게 한다면 대등한 당-청관계 정립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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