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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황당한 현실 인식으로 국민을 훈계하는 대통령

등록 2016-08-15 16:57수정 2016-08-15 16:57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의 상당 부분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 할애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그런 나라를 만든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 등 “잘못된 풍조”를 비판했다. ‘헬조선’ 따위 말을 쓰는 국민을 훈계하는 모양새다.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참으로 걱정스럽다. 헬조선 등 신조어는 우리 사회가 그만큼 살기 힘들어진 탓에 나온 말이라고 봐야 한다. 양극화 심화, 청년 취업난과 비정규직 확대, 보육·주거·사교육 비용 증대와 저출산의 악순환, 노인빈곤 악화 등 민생의 여러 부분이 추락한 상황을 아우르는 말이다. 국민의 삶의 질이 각 부분에서 이렇게 나빠지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원인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지 않다면 그런 표현이 널리 쓰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이라면 이런 상황의 근본 원인을 성찰하고 정부의 정책 실패를 되돌아봐야 한다. 황당하게도 박 대통령은 그러기는커녕 현실의 문제들을 마치 없는 양 외면한 채, 이를 지적하는 것을 되레 비난하고 ‘국민 탓’만 하고 있다.

모래에 머리를 박은 타조처럼 엄연히 있는 문제를 모른 체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순 없다.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내놓은 대안은 현실 인식만큼이나 어처구니없다. 그는 “자기 비하와 비관, 불신과 증오” 대신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 그리고 “콩 한 쪽도 나누는 공동체 의식”을 주문했다. 글로벌 경제 부진 등 당장의 위기를 타개할 대책도 창조경제 전략에 대한 확신, 기업인의 자신감, 국민의 신념, 노동자의 양보 등이다. 국정운영의 전략이나 비전, 구체적인 대응책은 찾을 수 없다. 대신 1960·7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정신승리’ 요법뿐이다. 성숙한 사유와 충분한 검토의 결과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건국 68주년”이라는 표현도 썼다. 헌법은 대한민국이 1919년 3·1 운동으로 건립됐다고 명시하고 있다. 1948년엔 정부가 수립됐을 뿐이다. 대통령의 표현은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헌법적 주장이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열사”들을 기리면서 엉뚱하게 건국 운운한 것은 더욱 어색하고 반역사적이다. 여러모로 대통령의 경축사는 매우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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