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청와대 민정수석이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초유의 사태를 맞이해 청와대가 취해야 할 행동은 너무나 분명하다. 우병우 수석의 경질과 대국민 사과다. 그것이 상식이고 민심의 요구다. 하지만 청와대의 대응은 완전히 거꾸로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19일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감찰 내용을 유출한 것은 중대한 위법행위이자 묵과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비난하면서 유출 내용 및 경위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우병우 해임’ 대신 ‘이석수 공격’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고 나선 것이다. 청와대의 오만함과 적반하장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청와대가 연출한 최악의 막장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이 특별감찰관이 언론사 기자와 나눴다는 대화록 내용을 보면, 실제로는 기밀 사항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다. 우 수석과 경찰의 비협조를 개탄하고, 감찰 활동 만기일이 언제인지, 감찰 대상이 누구인지를 이야기한 것 정도를 두고 청와대가 “국기를 흔드는 일”이라고 비난한 것은 가당치 않다. ‘국기를 흔드는 일’로 따지자면 ‘비리 백화점 민정수석’이 여전히 다른 고위공직자 후보들의 도덕성을 검증하는 현실이 훨씬 심각하다.
감찰 내용 유출 의혹이 어차피 쟁점으로 등장한 이상 진실규명은 불가피하다. 특히 이 감찰관과 기자의 대화 내용이 어떤 경로를 통해 <문화방송>에 흘러들어 갔는지를 확실히 규명함으로써 권력기관의 불법 해킹 의혹, 우 수석 본인의 개입 여부 등을 철저히 가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안의 경중과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감찰 내용 유출 의혹은 우 수석의 비리 의혹에 비하면 곁가지에 불과하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뭣이 중헌디?”라는 질문을 길 가는 시민 아무에게나 물어보라. 대답은 모두 한 가지, ‘우병우 의혹의 진실규명’일 것이다. 청와대는 너무나 명백한 상식과 민심을 외면한 채 어이없는 본말전도 행위를 하고 있다.
청와대의 속성상 이 특별감찰관을 ‘범법자’로 몰아가는 몸통이 박근혜 대통령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자신이 임명한 특별감찰관을 죽이면서까지 우 수석을 살리려 안간힘을 쓰는 대통령의 비정상적인 사고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우 수석 없이는 하루도 국정운영을 할 수 없다고 여길 정도로 ‘우병우 중독증’이 너무 심각한 탓인가. 아니면 청와대 내 ‘우병우 사단’ 인의 장막에 가려 판단력 마비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가. 혹시 일각의 관측처럼 청와대 내 다른 인사들의 비리 혐의가 우 수석의 비리 혐의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심각해서 서로서로 약점을 쥐고 봐주는 분위기인가.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청와대의 판단력 실종과 의사결정 마비 현상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석수 특별감찰관과 우 수석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하다 ‘한숨만 푹푹 쉬었다’는 대목이 이를 웅변한다.
청와대가 특별감찰관의 우 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 의뢰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며 우병우 감싸기에 나서면서 상황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청와대의 발표는 사실상 검찰에 대한 ‘가이드라인’인 만큼 검찰 수사의 한계도 명백해졌다. 특별검사제 등 진실을 제대로 밝힐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과 싸우고 민심과 맞서겠다고 나선 청와대를 더는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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