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성 경찰청장 후보자가 과거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낸 데 더해 경찰 신분을 숨겨 징계를 모면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 총수가 되어선 안 될 치명적인 결격사유다. 이런 사람을 버젓이 검증에서 통과시키고 후보로 내세운 청와대의 무능과 오만이 새삼 놀랍다.
이 후보자의 음주운전 사고는 음주운전을 단속해야 할 경찰의 수장에겐 결정적인 흠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단순 음주사고’라는 이 후보자의 해명도 믿을 수 없게 됐다. 보험사 기록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1993년 11월 면허정지 수준인 혈중 알코올 농도 0.09% 상태에서 중앙선 침범으로 차량 2대를 대파시킨 사고를 냈다. 피해 차량에 준 보험금이 차값에 육박하고 이 후보자 차량도 폐차했다니 큰 사고다. 기록대로 인명 피해가 과연 없었는지도 의심스럽다.
은폐와 조작은 그때부터 시작됐던 것으로 보인다. 보통의 범죄 조사처럼 교통사고 조사도 직업을 묻는 것이 기본이다. 신분을 숨겨도 경찰은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강원지방경찰청 상황실장이라는 이 후보자의 당시 신분이 끝까지 숨겨졌다면 적극적인 은폐 행위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이 후보자 말대로 “정신이 없고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승진에 지장이 될 징계기록을 남기지 않으려고 일부러 적극적으로 감췄을 것이다. 그런 ‘신분 조작’에는 조사담당 경찰관 등의 공모나 묵인도 있었을 것이다. 이 후보자가 뻔히 알 만한 지위의 관내 간부였으니 ‘경찰 가족’이라고 일부러 눈감아주지 않았다면 신분을 숨기기는 애초 어렵다고 봐야 한다. 경찰은 이런 사실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문제 된 뒤에도 당시의 수사기록을 못 찾았다며 끝내 내놓지 않고 있다.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 검증을 맡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전후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이 후보자도 신분을 숨긴 사실까지 민정수석실에 알렸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병우 수석이 지휘하는 민정수석실은 이 후보자 내정을 강행했다. 검증이 부실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런 위법과 허물쯤이야 별문제로 여기지 않을 정도로 도덕성과 법의식이 마비된 탓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청와대는 이 후보자 내정을 철회해야 한다. 또다시 ‘배 째라’는 식으로 임명을 강행해 국민과 맞서려 들 일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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