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이런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방’과 ‘폭로성 발언’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최근 <한겨레>가 보도한 최순실씨 스캔들을 지칭하는 게 분명해 보인다. 대통령의 비선 측근인 최순실씨와 청와대 수석비서관까지 연루된 비리 의혹을 ‘사회를 혼란시키는 유언비어’쯤으로 간단히 치부해버리는 대통령의 인식이 놀랍다. 시시비비를 가려 국민의 의문을 풀 생각은 않고 외부의 적을 내세워 침묵을 강요하는 건 독재자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박 대통령 논리는 단순하다. 그는 “미국의 링컨 대통령도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진다고 하면서 국민적 단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조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맞서 우리 국민들이 단호한 자세로 하나가 돼야만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미래를 지켜낼 수 있다”고 했다. 내부에서 ‘비방’과 ‘폭로’를 하면 북한만 도와주는 꼴이 돼 우리의 미래는 없다는 뜻이다. 전시상황도 아닌데 증거를 갖고 권력형 비리 의혹을 제기하는 걸 마치 ‘이적행위’라도 하는 양 모는 게 민주국가의 지도자가 취할 태도인지 의문이 든다.
분란을 부추기고 의혹의 뭉게구름을 피워올리는 건 오히려 박 대통령 자신이다. 지금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최씨 관련 보도의 모든 의문점에 대해 하나도 해명하지 않고 있다. 사실이 아니라면 뭐가 사실이 아닌지 설명을 해야 국민이 판단할 텐데, “언급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대통령 측근이 기업들로부터 수백억원을 거둬 목적이 불분명한 재단을 만들고 그 돈을 걷는 과정에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언급할 가치가 없다’면, 도대체 언급할 가치가 있는 건 어떤 일인지 묻고 싶다. 그러고는 ‘국민 단합을 위해 비방과 폭로를 하지 말라’고 하니, 이런 게 바로 막무가내라 아니할 수 없다.
여론에 따라 정치를 하는 건 민주적 지도자의 기본이다. 여론은 아예 무시하고 내 말만 들으라는 건 중세 왕정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다. 박 대통령은 스스로를 극단적 권위주의 시절의 절대군주쯤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언론과 야당에 입을 닫으라고 요구하기 전에, 우선 국민의 궁금증에 대답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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