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졌던 백남기 농민이 25일 별세했다. 살인적 진압에 쓰러진 지 317일째이고, 안타깝게도 칠순 생일이 하루 지난 날이기도 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고인의 삶은 희생과 헌신이었다. 유신 독재에 맞서 싸우다 고향인 전남 보성으로 돌아가 30년 넘게 농사를 지으며 줄곧 이웃과 생명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올곧고 정갈한 생활 위에 평화·생명·공동체 운동을 쌓아갔던, 함께 실천하는 농민이었다. 고인은 정부의 농업 경시 정책 속에서 외면당하고 낮은 쌀값과 빚에 허덕이던 한사람의 농부이기도 했다. 몇 년째 쌀값이 폭락해도 대통령 선거 때의 쌀값 보장 공약을 모른 척하는 정부가 야속했던 농민이 그 혼자만은 아니었을 터이다. 고인은 농민의 어려운 처지를 항의하려 동료 농민들과 함께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했다. 그러다 변을 당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명백한 국가폭력의 결과다. 경찰은 아무런 위협이 될 수 없는 예순아홉살 맨손의 노인을 직접 겨냥해 고압 물대포를 쏘았다. 경고방송이나 예비적 분사도 없었고, 직사 살수 때는 가슴 아래를 겨냥한다는 안전지침도 무시한 채 가까운 거리에서 바로 머리를 겨냥했다. 심지어 쓰러진 이를 구호하는 응급차에까지 물대포를 쐈다. 잔인하기 짝이 없는 야만적 행위였다. 법원도 경찰의 이런 행동을 ‘위법’이라고 판단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경찰의 잘못을 확인했다. 공권력 남용은 물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까지 추궁할 만한 범죄행위였다.
그런데도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책임자 누구도 사과는커녕 가족을 찾아 위로하지도 않았다. 정부의 야멸찬 태도는 백남기 농민이 세상을 뜬 날까지도 변함이 없다. 고인의 죽음에 애도의 뜻을 밝힌 정부 책임자는 아직 아무도 없다. 국회 청문회에서 사과를 거부했던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은 고인의 별세에 대해서도 “노코멘트 하겠다”며 최소한의 유감 표명도 거부했다. 불통·무능 정부에 대한 항의를 살인적 진압으로 가로막더니 그로 인한 희생까지 냉담하게 외면한 것이다. 오히려 경찰은 고인이 숨진 서울대병원 근처에 수백명의 경찰을 배치하는 등 여전히 ‘치안’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이런 비인간적인 정부를 과연 정부라고 부를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박근혜 정부가 져야 한다. 이를 어물쩍 넘기려 해선 안 된다. 경찰 지휘부와 국가 등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까지 제기돼 있는 터다. 백남기 농민을 죽게 한 국가폭력의 책임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밝히고 합당한 조처를 내릴 책무는 검찰을 비롯한 국가에 있다. 일부의 의심대로 경찰 폭력 때문이 아니라고 둘러댄다 해도 믿을 국민은 없다. 이번에도 책임 규명과 처벌에 실패하면 국가와 공권력의 신뢰 실추는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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