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올해 말 검정 심사를 앞두고 역사부도 교과서를 만드는 출판사 실무자들을 불러 ‘건국절 사관’을 따르라고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더니 검정 교과서까지 입맛대로 바꾸겠다는 뜻을 내보였다.
얼마 전 교육부가 마련한 간담회에 다녀온 출판사 실무자의 말을 들어보면, 교육부 역사정상화추진단 간부들이 이 간담회에 참석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1948년 대한민국 수립’으로 수정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따라 당장 내년부터 국정 역사교과서가 학교 현장에서 사용될 예정이다. 여기에 맞춰 부교재로 쓰이는 역사부도 교과서 수정자료를 만들어야 하는데, 교육부가 개입해 ‘1948년 건국 사관’을 따르도록 한 것이다. 교육부의 검정 심사를 받아야 하는 출판사들로서는 이런 요구를 압박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역사가 거꾸로 가도 이렇게 갈 수는 없다.
교육부의 검정 교과서 수정 요구는 잘못된 것을 기준으로 삼아 옳은 것을 내치는 것과 다름없다. 지난해 말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발표하자 현직 교수·교사들이 대거 집필 거부 선언을 해 시작도 하기 전에 신뢰를 잃었다. 그 뒤로 얼굴 없는 집필자들이 밀실에서 음모를 꾸미듯 서둘러 역사교과서를 쓰고 있다. 거리낌이 없다면 이런 밀실 졸속 집필을 할 리가 없다. 세간에는 집필 중인 국정교과서가 친일세력에게 역사적 면죄부를 주고 이승만-박정희 독재를 정당화하는 반교육적 교과서가 될 것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에게 바치는 ‘대통령 가족을 위한 교과서’가 될 것이 뻔하다는 비아냥이 넘친다. 정부가 할 일은 검정 교과서까지 망가뜨리는 압박 작업이 아니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금이라도 철회하고 역사 앞에 사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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