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설립 과정에 청와대 개입 의혹이 일고 있는 미르재단과 케이(K)스포츠재단을 10월에 해산하고 새 통합 재단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설립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재단을 갑작스레 해산하겠다는 건 그동안 제기된 의혹이 사실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떳떳하다고 큰소리를 치다가 감춰둔 실체가 속속 드러나자 이제 증거라도 없애보겠다는 속내가 빤히 보인다. 재단 관계자들은 ‘해산 결정’ 소식조차 언론 보도를 통해 들었다고 한다. 설립 과정도 의혹투성이인데, 해산 결정도 마찬가지다.
전경련은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의 운영 상황을 자체 진단한 결과, 문화·체육 사업 간에 공통부분이 많고 조직구조, 경상비용 측면에서 분리운영에 따른 비효율이 나타나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돈을 낸 기업들이 운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으니, 비효율적 운영이란 말은 맞을 것이다. 하지만 재단 운영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가 며칠 만에 해산을 결정한 이유로는 너무 빈약하다. 하필 <한겨레>가 재단 설립 때 기업들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낱낱이 보도한 날 이런 결정을 내렸으니, 그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다.
전경련은 그동안 두 재단을 기업들의 뜻을 모아 전경련이 주도해 설립했다고 강변해왔다. 그러나 실상은 청와대가 주도하고, 전경련은 심부름을 하고, 재벌 계열사들은 돈을 내는 데 동원되기만 했음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의혹을 풀어주기는커녕 재단을 서둘러 해산해버리겠다니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동안 야당은 두 재단의 지출 내역을 제출하라고 계속 요구했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재단의 거부를 이유로 지금껏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런 태도로 보면, 전경련과 정부는 재단 해산을 핑계로 관련 서류를 없애버리고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뗄 가능성이 크다. 전경련의 이번 결정은 새누리당이 대표의 단식과 의원들의 국정감사 불참으로 국회 운영을 마비시키고 있는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 문제를 얼버무릴 시간을 벌어보자는 것 아니겠는가. 전경련은 두 재단의 해산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 그보다 먼저 설립 과정을 솔직히 밝히고, 두 재단이 그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부터 드러내는 게 옳다. 전경련은 지금 두 재단보다 먼저 해체돼야 할 단체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어리석은 길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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