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제약회사인 한미약품의 ‘늑장 공시’ 파문이 일고 있다. 손실을 본 개인투자자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고, 금융당국은 내부자거래 등 불법행위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8조원 규모의 신약 기술 수출 계약을 성사시키면서 대박을 터뜨려 주식시장의 최대 관심 종목 중 하나로 떠올랐다.
한미약품은 지난달 29일 주식시장 마감 뒤인 오후 4시35분 미국 제약회사인 제넨텍과 1조원 규모의 신약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이 호재에 힘입어 한미약품 주가는 30일 시장이 열리자마자 5% 이상 급등했다. 그런데 오전 9시29분 한미약품이 느닷없이 다국적 제약회사인 베링거인겔하임과 지난해 맺은 항암제 ‘올무티닙’의 기술 수출 계약이 해지됐다고 공시했다. 악재 공시가 뜨자 주가는 18%나 폭락했고 연중 최저치로 장을 마감했다. 문제는 한미약품이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계약 해지를 통보받은 게 29일 오후 7시6분이었다는 것이다. 현행 시스템상 30일 개장 전까지 충분히 공시할 수 있었는데도, 한미약품은 호재로 주가가 급등한 뒤에야 악재를 공시했다.
특히 30일 한미약품의 공매도량이 10만4327주로, 한미약품이 상장된 이후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점이 의심이 간다. 공매도란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주가가 실제로 내려가면 싼값에 되사 빌린 주식을 갚음으로써 차익을 챙기는 투자 방법이다. 내부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베링거인겔하임과의 계약 해지라는 미공개 정보를 미리 알고 불공정거래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내부자거래는 주식시장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을 뿌리째 뒤흔드는 중대한 범죄 행위이다. 금융당국은 주식시장에 건전한 질서를 정착시킨다는 차원에서 불공정거래 의혹에 대해 엄정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올무티닙을 투약한 환자 중 1명이 지난 4월 사망한 사실을 알면서도 5월 판매 허가를 내준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할 식약처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의약품 전문기구인 중앙약사심의위원회가 4일 열린다. 올무티닙의 안전성 여부를 면밀히 따져 필요한 조처를 내려야 할 것이다.
이관순 한미약품 대표이사가 2일 서울 송파구 본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늑장 공시’ 등에 대해 해명하기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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