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동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의 언행이 도를 넘었다. 중대한 국책연구기관의 장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 원장은 4일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근현대 민주화 역사를 ‘운동권 연표’라고 깎아내렸다. 민주주의 발전이야말로 한 나라의 근대성을 가늠하는 핵심 가치인데, 그 역사를 서술한 것을 두고 어떻게 ‘운동권’을 들먹일 수 있는지 기가 막힌다. 이 원장은 “국가 권력에 대한 대항사·항쟁사로서만 현대사를 꾸민다면 애들(학생들)은 계속 반항심이 고취된다”며 민주의식을 반항심으로 치부하는 저열한 인식 수준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정부가 국정 역사교과서를 밀실에서 집필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비스킷을 만들 때도 국민에게 전부 중간중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답변을 했다.
이 원장은 앞서 국정감사장에서 태도와 답변의 불량함을 추궁하던 국회의원들을 두고 “새파랗게 젊은 것들”이라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다. 제주4·3항쟁을 두고는 “공산 폭도에 의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가 항의를 받았다. 문제 발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원장은 국감장에서 “국정 역사교과서(원고본) 근현대사 분량이 많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는 말도 했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현재의 삶을 규정하는 근현대사임을 외면하는 반교육적·반역사적 발언이다. 이 원장은 4일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국정교과서 편찬심의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이 심의위원이라니 그렇잖아도 우려스러운 국정교과서가 얼마나 더 일그러질지 걱정이 태산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후신이다. 나라의 정신문화를 책임진다는 취지로 세워진 곳이다. 자격 미달 인사가 그런 중요 기관의 우두머리로 앉아 있다는 것은 정신문화 모독이다. 교육부는 이 원장을 즉각 교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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