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이제 자존도 염치도 다 잊은 것 같다. 정치권력의 뜻 그대로 따르면서 천연덕스럽게 궤변을 늘어놓는다. 법 규정과 법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엔 수사 시늉조차 내지 않는다. 그런 일이 요즘 잇따르지만, 13일 공소시효를 맞은 4·13 총선 공직선거법 위반 수사는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대놓고 편파적이다.
검찰은 김성회 전 새누리당 의원에게 특정 지역구 경선 불출마를 요구한 최경환·윤상현 새누리당 의원과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무혐의 처리했다. 전화 녹취록에 드러난 이들 ‘친박(친박근혜) 실세’ 3인 발언에 협박이나 이익 제공 등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터무니없는 억지다. ‘나서지 마라, 대통령 뜻이다, 다른 지역에 가면 도와주겠다, 안 그러면 사달 난다’는 통화 내용은 검찰이 말한 ‘조언’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사달 난다”며 “내가 별의별 것 다 가지고 있다니까, 형에 대해서”라는 말은 전형적인 ‘협박’의 언사다. 선거법은 당내 경선 후보자를 폭행·협박 또는 유인한 자를 매우 무겁게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사정기관을 동원해 비리를 캐겠다는 노골적인 암시가 ‘조언’일 수 없거니와, “옆(지역구)에 보내려고 하는 건 우리가 도와주겠다는 것”이라는 말이 ‘유인’이 아니라는 검찰의 변호도 눈 가리고 아웅이다. 공천 논의가 ‘사적 대화’라는 주장도 헛웃음을 자아낸다. 불출마 협박보다 더 큰 선거법 위반이 없을 것이고 드러난 증거만으로도 위법이 명백한데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강행했다. 고발인 조사도 없이, 최 의원과 현 전 수석은 서면조사에 그쳤을 뿐인데도 그런 결정을 내렸으니 뻔뻔하기까지 하다.
검찰은 친박 실세에겐 그렇게 면죄부를 주면서 야당 쪽은 대거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야당 의원 수는 여당의 거의 두 배이고, 초선이 대부분인 여당 쪽과 달리 야당 쪽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정책위의장, 대변인, 다선 중진 의원 등이 태반이다. 추 대표 등의 혐의 내용이 친박 3인방의 혐의보다 더 분명하고 더 중한지 의아해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기소로 족쇄를 채우려는 정략적 의도가 아닌지도 의심된다.
이제 ‘편파 검찰’의 오명을 씻기는 더 어렵게 됐다. 야당에선 검찰의 편향성이 더 심해진 이유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서 찾고 있다. 그렇게 의심할 만도 하다. 권력의 전횡에 이미 마비된 검찰을 이대로 둘 일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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