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3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일부를 임명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확산 이후 첫 ‘조처’다. 급격한 민심 이반에 어떻게든 제동을 걸려는 것이겠다. 이를 시작으로 나름의 수습책을 내놓아 정국을 풀겠다는 계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계산은 처음부터 잘못됐다. 지금은 박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고 정국을 주도할 자격과 능력이 있는지부터 의심을 받는 상황이다. 거리로 나온 민심은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고 있고, 박 대통령이 국정에서 확실히 손을 떼지 않고서는 현 정국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보수층에까지 널리 퍼져 있다. 여당까지 거국중립내각을 주장한다. 그런 마당에 기존의 청와대 비서실을 그대로 재구성하는 게 온당한지 의문이다. 대통령이 국정의 권한 대부분을 내려놓기로 한다면 비대한 비서실을 다 갖출 이유는 없다. 최소한의 기능으로 충분할 수 있다. 그렇잖아도 청와대 비서실의 과도한 권한이 내각의 기능부전과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있는 터다. 소수 비서진을 통한 대통령의 권력행사 방식을 고쳐야 한다면 청와대 수석 임명이 사태 해결의 첫 조처여선 안 된다.
민정수석과 홍보수석을 우선 임명한 것은 더욱 불순해 보인다. 민정수석은 검찰 등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자리다. 그만큼 대통령의 중요한 권력 도구다. 가깝게는 박 대통령 자신도 수사 대상인 검찰의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를 챙기게 된다. 그런 자리에 전임자에 이어 또다시 검사 출신을 임명한 것은 검찰에 대한 장악력을 유지하고 국정 주도권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애초 겸허하게 민심에 귀 기울이려 한다면 다른 정부처럼 검사 출신이 아닌 이를 기용했어야 했다. 더구나 신임 최재경 민정수석은 검찰 내 인맥이 두터울뿐더러, 여러 사건에서 정치권력에 유리한 쪽으로 방향을 뒤튼 전력이 있는 대표적인 정치검사다. 강력한 검찰 통제를 통해 수사를 ‘관리’하고 상황을 무마하려 그를 택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홍보수석을 정무수석 등에 앞서 임명한 것도 여야와의 협의를 통한 사태 해결보다 대국민 선전 따위를 통해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뜻이 아닌지 걱정된다.
그런 헛된 꿈에서 비롯된 수습책이라면 포기하는 게 옳다. 사태는 이미 그 정도로 해결될 단계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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