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케이스포츠 재단의 모금과 운영에 깊이 개입했다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2일 검찰 출석에 앞서 “모든 일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최순실씨와 박근혜 대통령 사이에 ‘직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는 말도 측근에게 했다고 <동아일보>가 전했다. 그 자신은 ‘하수인’이고 ‘깃털’일 뿐, ‘배후’와 ‘몸통’은 박 대통령과 최씨라는 폭로다.
짐작은 했지만 충격적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박 대통령은 비선실세 최씨와 손잡고 청와대라는 최고의 권력을 앞세워 기업에서 강제로 돈을 뜯어내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박 대통령도 지난달 20일 청와대 회의에서 “문화체육 활성화를 위해 기업인들에게 투자 확대를 부탁드렸다”며 관여 사실까지는 시인했다. 그러면서도 “기업들이 뜻을 모은 것”이라며 강제 모금은 부인했다. 그런 변명은 진작에 거짓으로 드러났다. 기업 관계자들이 안 수석의 ‘협조 전화’가 여러 차례 있었다며 강제성을 증언한 데 이어, 청와대 개입을 부인했던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도 검찰에서 ‘안 수석 지시로 모금에 나섰다’고 결국 털어놓았다. 모금을 강제했다는 안 전 수석까지 “대통령 지시”라고 ‘실토’했으니, 직권남용 등의 주범과 종범은 이로써 분명해졌다.
박 대통령이 모금에만 관여한 것은 아니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지난 4월 박 대통령의 멕시코 방문 당시 안 수석이 국제전화를 걸어와 ‘그간 수고했다’는 대통령의 말을 전하면서 사퇴를 종용했다고 <한겨레>에 밝혔다. 두 재단의 전직 사무총장들은 안 수석이 ‘대통령의 뜻’이라거나 ‘관심사항’이라며 재단 운영과 관련한 주문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이 재단의 일상적 인사와 운영까지 지휘한 셈이다. 재단 사업에 대한 관심도 자주 드러냈다고 한다. 그렇게 뒤를 봐준 결과가 최씨와 그 주변의 횡령과 이권 챙기기였다. 대통령은 알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쯤 되면 박 대통령 수사는 피할 길이 없다. 대통령에게 직접 경위를 듣지 않고서는 사건의 진상 규명과 법적 처리가 불가능한 형편이다. ‘현직 대통령의 불소추’ 조항도 핑계가 될 수 없다. 기소는 나중 일이라도 수사는 지금도 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검찰은 대통령 직접조사를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 스스로 ‘나부터 수사하라’고 나서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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