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2013년 말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라며 씨제이(CJ)그룹을 이끌고 있던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압박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부회장은 결국 외국으로 나가 지금껏 ‘유랑’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일은 청와대와 최순실씨가 재벌 기업들을 압박해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에 돈을 내게 한 것과 별개로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권력자의 사적인 이해 때문에 국가권력을 무기 삼아 민간기업 경영활동에 깊이 개입한 것으로, 권력의 정당성을 뿌리째 흔드는 일이다. 조 전 수석의 말대로 박 대통령이 이를 지시했다면 그것만으로 탄핵감이다.
<엠비엔>(MBN)이 공개한 당시 통화 내용을 보면, 조 전 수석이 손경식 씨제이 회장에게 한 말은 충격적이다. 그는 “너무 늦으면 진짜 저희가 난리가 납니다. 지금도 늦었을지도 모릅니다”라며 이 부회장의 퇴진을 재촉한다. 이를 거부하자 그는 “그냥 쉬라는데요,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하십니까”라고 협박성 발언을 이어갔다.
이 부회장은 이재현 씨제이그룹 회장의 누나로, 당시 구속돼 있던 이 회장을 대신해 그룹 경영을 이끌고 있었다. 조 전 수석은 이 부회장 퇴진 요구가 박 대통령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고, “중간에서 확실하게 전달해 드렸습니다”라고 대통령의 뜻임을 거듭 강조했다. 조 전 수석은 이에 앞서 손 회장에게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에서 물러나라는 압력을 가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실제 손 회장은 임기를 2년가량 남겨두고 2013년 7월 갑자기 물러났다.
청와대가 씨제이그룹 경영진을 이렇게 압박한 이유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다만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씨제이가 자사 방송채널의 토론·개그 프로그램에서 박근혜 후보를 풍자하는 내용을 방송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광해>를 배급한 것 등을 눈엣가시로 여긴 때문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가 문화계 인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탄압을 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일 아니겠는가.
조 전 수석은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당시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검찰은 즉각 수사에 나서 진상을 밝혀야 한다. 법치를 짓밟고 권력을 사유화했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이 일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는 별개로 결코 묵과하고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