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행동을 보면 답답하고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한광옥 비서실장은 7일 여야 정당을 돌며 “영수회담에 참여해 달라.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고 요청했다. 회담이 열리면 대통령이 뭔가 양보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아둔하기 짝이 없는 착각이다. 지금은 패를 등 뒤에 감추고 야당과 협상이나 양보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둑이 무너져 모든 게 휩쓸려가는데 ‘여야가 협의해서 둑을 한번 고쳐 보자’고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수십만 촛불에 담긴 국민 분노를 보고도 대통령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박 대통령이 끝까지 국민에게 항복하지 않고 버티려고 애쓰는 이유는 자명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권력을 손에서 놓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은 여야 대표와 만나면 ‘김병준 총리 후보자에게 내정 권한을 주겠다. 사실상의 책임 총리다’라는 말로써 야당을 한번 설득해 보겠다는 미련을 버리질 못하고 있다. 국민 저항 수위에 따라 한발 한발 뒤로 물러서면서도 뭔가 변칙으로 위기를 벗어날 기회만 노리는 것 같다.
국민은 그런 꼼수를 벌써 눈치챘다.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책임 총리’에게서 다시 권력을 거둬들일 것이란 걸 직관으로 깨닫고 있다. 이미 국민 마음에서 대통령은 탄핵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민심에 순응해서 행동하지 않으면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명예마저 지키기 힘들어질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김병준 총리 지명 철회와 국회 주도의 거국중립내각 수용을 촉구한 건, 여당 내부에서도 박 대통령을 보호할 생각이 사라지고 있음을 뜻한다.
박 대통령은 한 줌의 권력이라도 유지하려는 생각을 빨리 버려야 한다. 당장 김병준 총리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고, 새누리당에서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친박 지도부를 사퇴시켜야 한다. 국회가 추천하는 국무총리에게 내치뿐 아니라 외치까지 모두 맡기겠다는 명시적인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여야 대표회담이 의미 있고, 야당도 대통령과 대화할 최소한의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지금 민심으로는 정치권의 이런 노력조차 국민이 받아들여 줄지 매우 불투명하다.
그나마 이렇게 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더는 꼼수를 부리지 말고 지금 당장 ‘모든 권력을 내려놓겠다’고 국민 앞에 선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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