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 주역이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정관주 차관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2014년부터 6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재직한 조 장관이 당시 국민소통비서관이던 정 차관과 함께 블랙리스트를 만들었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을 경유해 문체부로 내려보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문체부의 최고 자리에 오르기 전 문화예술인 죽이기에 앞장섰다는 얘기인데, 사실이라면 문체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체부 고위 관계자 등 여러 사람에게서 나온 증언들은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실제로 벌어진 일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조윤선-정관주 라인이 블랙리스트 작성과 전달을 주도했으며,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도 이 일에 관여했다고 한다. 또 문화예술위원회 전·현직 관계자들도 당시 문체부 사무관이 청와대에서 내려온 명단을 들고 전남 나주의 문화예술위원회로 찾아가 예술인 지원사업 대상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사와 단체를 빼라고 종용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때문에 문화예술위가 지원 대상 선정에 진통을 겪었고 석달이나 늦어진 2015년 3월 말에야 확정했다는 것이다. 이런 증언은 권영빈 당시 문화예술위원장이 ‘기금 지원 리스트가 있어서 지원 심의를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발언한 회의록 내용과 맞아떨어진다.
증언이 이렇게 구체적인데도 조 장관과 정 차관은 의혹을 부인하고만 있다. 조 장관은 지난달 문체부 국정감사에서도 야당 의원들의 블랙리스트 관련 추궁에 “그런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받았다”고 남 얘기 하듯 답했다. 증언들은 조 장관이 청와대 정무수석으로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당사자라고 가리키고 있는데,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문화계에서는 문화와 관련 없는 조 장관이 문체부 장관에 발탁된 배경을 놓고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증언들을 종합하면, 조 장관과 정 차관은 청와대의 ‘문화 탄압’ 지시를 충실히 집행한 데 따른 ‘인사 보은’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도둑에게 집 지키라고 열쇠를 내준 것이나 마찬가지 일이다. 블랙리스트 의혹은 문체부의 근본을 흔드는 중대사인 만큼 진상을 철저히 밝히고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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