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8일 정세균 국회의장을 방문해 “국회가 추천한 분을 총리로 임명하겠다”고 말했다. 새 총리에겐 내각을 통할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국회 방문 과정부터 발언 내용까지, 진실성 없고 모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진정으로 권력을 내려놓겠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 어떻게든 현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인상을 준다. 국민이 박 대통령을 불신하고 그의 본심을 여전히 의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진심으로 국민에게 무릎 꿇을 생각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이 국회 방문을 여야 정당에 통보한 건 당일 아침이었다고 한다. 야당 대표들을 만나려는 적극적인 노력은 없었던 셈이다.
더구나 정세균 국회의장과도 13분간 만나 단 세 문장만 말하고 돌아갔다. 항상 그래 왔듯이 자기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정치권 목소리엔 귀를 기울일 생각도 없었던 셈이다. 그러니 내용을 떠나 박 대통령 말에 과연 진심이 담긴 것인지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갖는 것이다. “국회가 좋은 분을 추천하면 총리로 임명하겠다”면서 핵심인 총리 권한에 대해선 명쾌한 생각을 밝히지 않은 것도 석연치 않다.
‘총리가 내각을 통할하게 하겠다’는 말은 헌법에 규정된 ‘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는 조항의 반복이다. 결국 최종 권력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얘기로 해석할 수 있다. 국민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하야’는 최소한 박 대통령이 모든 국정에선 완전히 손을 떼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헌법 조항을 반복하며 언제든지 총리에게 준 권력을 거둬들일 여지를 남기는 이런 꼼수를 수용할 수 있겠는가. 박 대통령은 마치 소시지를 얇게 썰어 이익을 극대화하는 살라미 전술을 쓰듯 아주 조금씩 양보를 하고 있다. 지지율 붕괴와 촛불의 확산에 뒤로 물러서는 척하지만 기회가 오면 언제든지 반격을 하려는 모습이다. 촛불을 든 시민이나 야당에서 작은 실수라도 하면 그걸 계기로 역풍을 기대해 보려는 심산이란 생각마저 든다.
박 대통령은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타개하려 하지 말라. 국민을 현혹해 현 상황을 모면하려 해선 안 된다. 정 의장 말대로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 권한 부여 문제로 논란이 일지 않게 깔끔하게 먼저 정리”한 뒤 국회 협조를 요청하는 게 순서다. 언제까지 얕은수로 국민을 기망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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