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비주류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8일(현지시각) 대선에서 예상외로 승리했다. 국제질서에 줄 충격은 지난 6월 국민투표에서 가결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보다 훨씬 강하다. 자국 이익을 노골적으로 앞세우는 국제 추세가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후보는 미국의 기존 대외정책 기조를 공격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해왔다. 초강국에 걸맞은 책임을 전제로 하는 전통적인 국제주의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그의 이런 노선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고립주의와 일방주의로 연결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미국이 자신의 단기적인 이익을 우선적으로 밀어붙인다면 지구촌에 끼칠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트럼프 후보가 좀더 현실적인 쪽으로 정책 기조를 조정하더라도 국제 갈등이 곳곳에서 생길 것이다.
이번 대선은 주류 정치에 대한 미국인의 반감과 더불어 미국 민주주의의 한계도 보여줬다. 정책 대결보다 인신공격이, 합리적 토론보다는 대중 선동이 앞선 ‘사상 최악의 선거’였던 만큼 후유증도 클 것이다. 미국 사회가 정치·계층·인종 등에서 깊이 분열돼 있음도 확인됐다. 트럼프 후보의 파시즘적 성향과 부도덕성도 대통령직 수행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각국은 이번 선거를 통해 미국의 취약한 모습을 목격했다. 트럼프 후보가 전향적인 정책을 통해 국민통합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위상은 더 떨어질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 우리나라와 한반도·동아시아 정세에 끼칠 영향이다. 그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맹국에 대해 ‘안보 무임승차론’과 ‘미국착취론’을 강변해왔다. 사실과 다르고 동맹의 가치와도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런 접근은 한-미 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큰 불안 요인이 될 것이다. 트럼프 후보가 동아시아 미사일방어(엠디) 체제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여온 터여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의 경북 성주 배치와 관련한 나라 안팎의 갈등은 해결의 길로 갈 수도 있다.
최대 현안인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 후보는 구체적인 해법을 내놓은 적이 없다. 중국 역할 강화나 한국의 핵무장 등을 언급한 적은 있으나 해법과 거리가 멀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미치광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북-미 대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트럼프 후보의 이런 종잡을 수 없는 태도는 핵 문제 악화에 기여할 소지가 다분하다. 그가 중국에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온 것도 핵 문제를 풀기 위한 국제협력에 걸림돌이 된다.
트럼프 후보의 당선은 한마디로 ‘불확실성의 증대’를 의미한다. 특히 미국이 강한 존재감을 보여온 한반도·동북아 지역에 줄 영향은 예상하기조차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 동맹을 합리적으로 재설정하고 북한 핵 문제의 해법을 찾는 일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우리나라가 사실상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하고 있는 것도 바로잡아야 한다. 핵 문제는 미국의 새 정권 초기에 협상 틀을 만들지 못하면 해결이 쉽지 않다는 각오로 접근해야 한다. 트럼프 후보 쪽에서 적극적 해법을 제시할 가능성은 적은 만큼 우리나라의 구실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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